유명산의 유명한 숲과 유명한 계곡

2022. 9. 21. 09:52오르다/100대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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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유명한 산들이 많지요.

그런데 산 이름이 유명산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 유명산에 오르기 위해 코스모스 꽃이 하늘하늘 피어있는 상쾌한 가을 길을 달려

아침 일찍 유명산 휴양림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아침 8시 10분.

휴양림 주차장은 9시에 입장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외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다시 걸어서 휴양림으로 들어갑니다.

 

 

휴양림 입구에 들어서자 유명산의 유명계곡이 모습을 드러내고

도로변의 성미 급한 벚나무는 벌써 단풍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유명산 자연휴양림 안내도입니다.

유명산 휴양림은 우리나라 최초의 휴양림으로 조성되었다지요.

그 명성에 걸맞게 규모가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산행이 목적인 내게는 휴양림의 압도적인 규모와 편의 시설들이 모두 그림의 떡입니다.

그냥 지나쳐 등산로 찾기에 바쁩니다.

 

 

규모가 크다보니 등산로 초입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휴양림 내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사방댐이 나오고서야 비로소 등산로가 나오지요.

첫 번째 왼쪽으로 오르면 계곡길,

이어서 나오는 두 번째 왼쪽으로 오르면 능선길입니다.

 

 

나는 능선길로 올라서 계곡길로 내려올 요량으로 능선길을 택합니다.

유명산 산행의 보편적인 정석 코스지요.

 

 

등산로는 초입부터 제법 가파릅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산길에 들어서자 쭉쭉 뻗은 잣나무 숲이 잡목 숲으로 바뀌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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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잡목 숲을 20분쯤 오르면 능선에 올라서게 되지요.

길은 외길인데 산악회 리본은 왜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까요?

물론 광고 효과도 있겠지만

티끌도 모이면 쓰레기가 되고 환경오염이 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요.

 

 

숲은 이제 완전히 잡목 숲으로 바뀌었습니다.

다양한 나무가 어울려 사는 아름다운 잡목 숲입니다.

 

 

600m 지점.

그리 긴 거리를 오른 건 아니지만 쉼 없이 오르기만 하기 때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그래서 쉬어가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왁자지껄 산악회 회원들이 들이닦칩니다.

조용한 휴식은 물론 호젓한 산행도 이제 끝난 듯합니다.

 

 

우리나라 산악회의 특징.

왁자지껄, 음담패설, 음주, 먹방...

높은 산은 비교적 마니아층이 오르기 때문에 덜 그렇지만

특히 만만한 산에서는 더 그렇지요.

 

 

잠깐의 휴식을 끝내고 조금 더 오르자 숲에 안개가 끼어있습니다.

멀리 산 밖에서 보면 운무일 테지요.

 

 

산안개가 가득한 잡목 숲 속에 금강송 한그루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독야홍청(獨也紅靑)합니다.

 

 

9월도 하순으로 접어들었는데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거기에다 습도까지 높아서 땀이 여름 산행보다 더 납니다.

그런데 땀수건이 없습니다.

손수건을 준비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랜만에 홀로 산행 준비를 하다 보니 빠트린 게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스틱과 손수건 없이 산행한다는 건 정말 생각도 못했지요.

 

 

'가는 날이 장날'이더라고

손수건 없는 오늘따라 땀이 어찌 그리 많이 나는지요.

 

 

아무튼 산안개가 무미건조하기 쉬운 9월의 산 풍경을 운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등산로에 드러난 나무뿌리가 마치 혈관이 얽히듯 얽혀 있습니다.

땅속에 있어야 할 뿌리가 모두 드러나 있습니다.

저 나무들은 과연 얼마나 더 버텨낼까요?

 

 

사실 나무들이 이렇게 뿌리를 앙상하게 드러내게 된 이유도 인간에게 있지요.

등산로가 아니었더라면 낙엽이 덮여 있어서 흙이 파여 나가지 않도록 해주었을 테니까요.

 

 

부러지고 상처가 나도 꿋꿋이 살아가는 나무들에게 사람들은 무엇일까요?

훼방꾼.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겠지요.

나무는 상처가 나고 부러지면 외부로부터 세균을 막는 자기 방어벽을 스스로 만든다고 합니다.

자기 치유력을 발휘해서 피부 생장을 통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드러난 뿌리를 스스로 어떻게 할까요?

 

 

이제 그렇게 300M쯤 이어지던 뿌리의 길이 끝나고 바위 길이 시작됩니다.

 

 

나무에게는 미안하지만 바위 길보다는 뿌리의 길이 백번 낫지요.

숲 속에 고사목 한 그루가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같습니다.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도 고통이지만

바위틈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生도 고통입니다.

 

 

고통스럽게 살아낸 나무는 가지도 예사롭지 않지요.

문득 힘들게 살아낸 어느 농부의 주름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나무도 금수저로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평탄하게 산 나무가 있는가 하면

민초들처럼 힘겹게 살아가는 나무도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잠깐의 바위 길이 끝나고 길은 다시 흙길로 이어집니다.

정상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지요.

 

 

유명산도 정상을 향한 마지막은 역시 계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2시간 10분 만에 정상에 올라섭니다.

안내판에는 1시간 30분쯤이면 오를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실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벌개미취가 반갑게 맞아주는 정상은 유명산이라는 이름과 달리 평범합니다.

862m라는 제법 높은 산인데도 정상에서의 볼거리는 거의 없습니다.

유일한 볼거리는 용문산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 정도이지요.

 

 

건너편에 용문산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내가 두 번쯤 올랐던 산이기도 하지요.

 

 

파노라마로 담아 본 용문산 능선입니다.

유명산과 용문산을 연계 산행한다는 산객들도 제법 있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합니다.

 

 

그 용문산 능선 끝부분에 한국의 마터호른이라는 별명이 붙은 백운봉도 보입니다.

 

 

그리고 남한강과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방향입니다.

 

 

활공장에선 패러글라이더들이 한 마리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공포, 자유, 스릴이 한 덩어리가 되어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짜릿한 스포츠가 있을까요?

 

 

유명산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 경계에 있습니다.

산이 유명해서 유명산일까요?

이름이 있는 산이라서 유명산일까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원래 이름이 없는 산이었다지요.

그래서 옛날 이 산을 오른 산악회 회원 중에서 '진유명'이란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의 이름을 붙여 '유명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좀 싱겁긴 합니다.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하산은 유명계곡 방향으로 합니다.

 

 

하산하는 중.

어디선가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지금도 이런 산객들이 있다니...

소나무 숲 사이로 고기 굽는 몰지각한 산행객들을 담아 봅니다.

 

 

계곡길의 하산 초반은 경사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소나무도 고단한 삶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유명산은 나무들의 백화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나무들이 다양합니다.

 

 

물푸레나무입니다.

물을 푸르게 한다는 뜻을 가진 나무입니다.

껍질을 물에 담그면 물이 푸르게 변한다지요.

껍질에서 나오는 수액은 안약으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이름과 달리 쓰임새는 살벌한 곳에 많이 쓰였던 나무입니다.

서당의 회초리는 물론 옛날 죄인을 다루던 곤장으로도 쓰였다고 하지요.

 

 

이렇게 다양한 나무들과 함께하는 사이 길은 이제 너덜길로 바뀌었습니다.

말 그대로 너덜너덜 지겨운 길의 시작이지요.

 

 

그렇지만 너덜길 옆으로는 아름다운 계곡이 시작됩니다.

유명한 유명계곡의 시작점이지요.

 

 

이제 계곡과 계곡이 만나는 합수점을 지납니다.

용문산에서 발원한 계곡물과 유명산에서 발원한 물이 만나는 지점이지요.

그래서 수량은 더욱 많아지고 길은 비교적 완만한 돌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하산해야 할 거리는 2.7km에 이릅니다.

그것도 너덜길을.

 

 

너덜길은 체력을 두배로 소모시킵니다.

아차 하면 발목을 삘 수도 있어서 신경을 바짝 써야 하고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몸의 중심을 잡아야 하지요.

발 디딜 바닥을 봐야 해서 고개도 아픕니다.

 

 

그렇지만 계곡엔 아름다운 소(沼)가 연신 지나갑니다.

소는 우리말로 늪이나 물웅덩이를 말하지요.

 

 

마당소

그중에는 이름이 있는 소도 있습니다.

마당처럼 넓어서일까요?

마당 소라는 소도 있습니다.

 

 

계곡 옆은 아찔한 암벽입니다.

올라갈 때 대부분 육산이었던 능선길과 완전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같은 산인데도 달라도 너무 다른 지형입니다.

 

 

암벽 위에 위태롭게 자리 잡고 튼실하게 살아낸 소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끕니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지요.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꿋꿋이 살아내는 것.

 

 

무슨 버섯일까요?

화려하면 독버섯이라는데.

아무튼 먹음직스러운 아름다운 색감의 버섯입니다.

 

 

용소

이제 용이 승천했다는 용소를 지납니다.

또 다른 유래는 주변의 바위가 용이 승천하는 듯하다는 뜻에서 그리 불렸다고 하는데

후자가 더 그럴싸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박쥐소를 지나면서 지겨우리만큼 지루했던 너덜길이 끝이 납니다.

여기서부터는 주차장까지 300 여 m.

그래서 사실상 산행이 끝나는 지점입니다.

 

 

무려 5시간 30분의 산행이 끝났습니다.

3시간 30분으로 안내되어 있는 코스를 두 시간이나 더 걸려서 끝낸 셈입니다.

물론 다른 산들에 비해서 긴 시간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힘들었던 산행이었지요.

첫째는 땀수건과 스틱이 없었고

둘째는 워낙 짧은 시간으로 안내되어 있어서 쉽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점심마저 준비하지 않았으니까요.

아무튼 오랜만에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하나를 완등 했습니다.

 

*산행코스: 유명산 자연휴양림 ㅡ능선길 ㅡ정상(2km)ㅡ계곡길 ㅡ마당소 ㅡ용소 ㅡ박쥐소 ㅡ휴양림(4.3km)

총 6.3km 사진촬영포함 5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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