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25. 20:07ㆍ바라보기/시골풍경
들녘은 다시 황금색으로 가득 찼습니다.
아니 황금보다 더 황금 같은 황금색입니다.
알알이 영근 황금빛 나락은
어쩌면 황금보다 더 황금 같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황금은 사람을 기분 좋게는 할 수 있지만
사람을 살릴 수는 없지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는
일제에 착취당해 식량이 없어서 굶어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물자가 풍부한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다지요.
그 굶주림 앞에서 황금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 황금보다 쌀 한 톨이 우선일 테지요.
그렇게 소중하다는 뜻일까요?
벼는 물론 보리, 밀, 조, 옥수수...
곡식은 익으면 한결같이 황금색을 띱니다.
그 황금 들녘을 보기 위해 올해도 어김없이 들판으로 갑니다.
들판은 어느 한 곳 빈틈이 없이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니 황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많은 황금색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아무리 문명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인위적으로 이 많은 색감을 가져올 수 있을까요?
여기서도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봅니다.
벌써 벼 베기를 끝낸 논도 있습니다.
추석이 아무리 빠른 추석이라고 해도 추석이 지났으니까요.
맞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맞아떨어지는 게 우리나라 옛 절기의 절묘한 이치이지요.
내가 어렸을 땐 벼베기 하는 날은 사람들로 논이 왁자지껄 했었지요
아주 어렸을땐 농악도 울렸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줄지어서 하는 벼베기는 농사일 중에서 가장 힘들지 않은 일이었지요.
그냥 막 뿌려서 자란 보리와 달리
포기 지어 자란 벼를 베기 때문에 재미까지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더라도 힘든 줄 모르고 재미까지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쌀밥에 대한 환상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지금은 소리 소문 없이 '콤바인'이라는 수확기가 쓱쓱 지나가며
어릴 때 시골 동네 이발사가 아이들 머리 깍듯이 벼를 벱니다.
그것도 두 대씩이나...
그리고 벼만 베는 게 아니지요.
탈곡까지 동시에 해냅니다.
밥상머리에서 아버님께서 항상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농부의 손이 100번은 들어가야 쌀 한톨이 된단다."
그래서 밥그릇에 밥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먹었던 버릇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버릇이 지금은 비만의 원인의 되고 있는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데 지금은 쌀 한 톨에 농부의 손이 몇 번쯤 들어갈까요?
ㅡ옛날 방식 수확 이후 공정 ㅡ
1 벼를 베서 논바닥에 무더기 지어 놓는다.
2 어느 정도 마르면 뒤집는다.
3 다 마르면 포게서 묶는다.
4 볏단을 모아서 가리 지어 놓는다.
5 집으로 가져와 다시 큰 가리지어 놓는다.
6 홅태로 홅는다.
7 덕석에 말린다.
8 덕석에서 골고루 잘 마르도록 몇 번을 뒤집는다.
9 다 마르면 가마니에 담는다.
10 디딜방아로 찧는다.
11 키로 까분다.
12 그런 다음 광으로 가져다 쌀독에 담는다.
여기까지가 수확기 이전 일 손은 빼고 추수 이후의 공정입니다.
물론 여기에 기록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잔손이 가지요.
마무튼 이 12번의 과정을 오늘 저 콤바인이 한 번에 다 해치우는 것입니다.
ㅡ2022.09.24.송산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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