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 등산코스 ㅡ쓸쓸한 초겨울의 소요산

2021. 11. 27. 09:55오르다/100대명산

위치:경기 동두천시 평화로2910번길 406-33

 

 

바람이 분다.

초겨울 낙엽진 산길에 거친 바람이 분다.

파도치듯 터울을 두고 불어대는 세찬바람에 낙엽은  우왕좌왕 마치 장수를 잃은 패잔병들 처럼  이리저리 힘 없이 몰려다니다가 결국 길가 구렁텅이에 처박혔다.

그렇게 한바탕 바람이 지나간 산길은 물로 씻어낸듯 깨끗했다.

 

 

초겨울부터 부는 바람은 북풍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 북풍이 좋아졌다.

예전 무명옷 아버님을 그렇게도 괴롭혔던 북풍이다.

어린날 들판을 가로질러 학교에 가던 여리디여린 내 빰을 햝켜 붉게 트게 만들었던 북풍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북풍이 좋아진 것이다.

 

 

그렇게 매정한 북풍이 좋아질 줄이야 정말 꿈엔들 생각이나 했을까?

그게 다 북풍보다 더 악랄한 놈이 나타난 때문이다.

미세먼지다.

북풍은 언젠가부터 그 지독한 미세먼지를 말끔이 없애주는 유일한 무기가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북풍이 좋아지기까지 하는데는 무겁기만 했지 추위를 제대로 막아주지 못했던 무명옷 대신 보온이 뛰어난 겨울옷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몇일동안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고 tv에선 연신 외출과 운동을 자제하라고 한다.

그러다가 북풍이 한파를 몰고 오면서 공기가 맑아졌다.

몇일만에 그 맑은 공기를 마시러 산행에 나섰다.

 

 

원효폭포와 원효굴

오늘 오르게 될 소요산은 원효의 산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닌 산이다.

하긴 전국에 원효의 발자취가 서리지 않는 유명산이 없기는 하지만...

신라시대의 고승 원효(617~686)대사가 30대때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 다니며 요상한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그 누가 자루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주겠는가?"

"나는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으리라."

당시 임금이었던 무열왕이 이 노래를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과부였던 자신의 딸인 요석공주와 짝을 이루게 했다.

이후 낳은 아들이 후일 신라의 대유학자 설총이다.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은 원효는 그렇게 파계승이 되어 승복 대신 걸인 옷을 입고 스스로를 소성거사라 자칭했다.

소성거사는 큰 표주박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춤추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중 속으로 들어가 불교를 전파했다.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는 각설이 타령이 그 시초란 말도 있다.

그리해서 그동안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불교를 대중 불교로 이끈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그렇게 대중들과 함께하던 원효는 다시 이곳 소요산에 머물면서 수행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요석공주는 아들 설총을 데리고 이곳으로 와서 조그만 별궁을 짓고 살면서 원효가 수도하는 원효대를 향해서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올렸다고 한다.

 

 

원효폭포와 원효굴을 지나고 자재암으로 오른다.

오르는 계단 중간중간에는 금과옥조 같은 명언들이 걸려있다.

얼마 전까지 단풍놀이로 왁자지껄했을 소요산의 초입은 한적하다 못해 적막했다.

덕분에 계단에 걸려있는 좋은 글들을 읽으며 천천히 오르는 호사를 누린다.

그래서 단풍명산으로 유명한 산이지만 초겨울로 접어든 한적한 오늘의 이 분위기가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효대

원효대사가 수행했다는 원효대에서 잠시 숨을 돌릴겸 원효대사의 흉내를 내 본다.

 

 

 

 

 

"평범한 것이 가장 훌륭한 것이다. 억지로 잘 하려고 하지 말라."

원효대에서 다시 계단에 걸려있는 좋은 글을 음미하면서 자재암으로 오른다.

 

 

자재암은 운치있는 절마당으로 유명한 곳인데 전국의 사찰들이 공사중이듯 자재암도 역시나 공사중이다.

거의 10여년전 고등학교 동창들과 왔을때도 공사중이었던것 같은데 아직도 공사중이다.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원효가 요석공주와 세속의 인연을 맺은 뒤, 이곳에 초막을 짓고 수행에 정진하고 있던 비내리는 어느날 깊은 밤이었다.

약초를 캐다 길을 잃었다며 어느 여인이 원효스님께 하룻밤 쉬어가기를 원했다.

원효의 불심을 시험하기위한 관세음보살이 변신한 것이다.

 

 

청량폭포

그러나 원효는 그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

설법으로 유혹을 떨쳐낸 원효를 본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그 여인이 관세음보살이었음을 깨달은 원효는 더욱 수행에 정진했다.

이후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막힘이나 걸림이 없다는 뜻의 무애자재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암자를 자재암이라고 했다고 한다.

 

 

암굴에 조성된 나한전과 물 좋기로 소문난 원효샘이다.

특히 암반을 뚫고 나오는 원효샘은 물맛이 좋아 찻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주변은 너무 어수선 했다.

 

 

바위 굴 속에 조성된 나한전 내부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내부는 엄숙하고 정갈했다.

 

 

이제 자재암을 뒤로하고 하백운대에서 공주봉까지 6개의 봉우리 완주를 위해서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한다.

그런데 본격적인 산행 시작과 동시에 거친 암벽길과 데크계단을 번갈아가며 올라야 했다.

 

 

자재암에서 하백운대까지는 650m로 비교적 짧은 거리이지만 거의 평지가 없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거기에다 단풍이 진 초겨울 산이라서 볼거리마져 없는 쓸쓸한 분위기가 감도는 오르막이다.

그래도 요근래에 데크계단을 설치해서 안전하게는 오를수 있었다.

 

 

하백운대 바로 아래 조망터에서 본 의상대 방향이다.

내가 오늘 가야할 봉우리이기도 하다.

 

 

30여분만에 오른 하백운대다.

봉우리의 정상이지만 특별히 정상 느낌은 없다.

하백운대는 높이가 440m로 오늘 올라야 할 말발굽 모양의 6개의 봉우리중 가장 낮은 봉우리다.

소요산은 원효의 산이기도 하지만 양사헌, 이율곡등 당대의 문인, 학자들이 즐겨 찾았던 산이다.

특히 김시습은 

"길 따라 계곡에 드니 봉우리마다 노을이 곱다.

험준한 산봉우리 둘러섰는데

한줄기 계곡물이 맑고 시리다."라고 예찬하기도 했다.

 

 

하백운대까지 앞서거니 뒷서거니 오르던 두세명의 산객들은 다시 내려가고 본격적으로 나홀로 산행이 시작되었다.

하백운대에서 중백운대까지는 400여m의 가파른 오르막이다.

 

 

제대로 정비가 되지않은 거친 오르막을 20여분만에 올라 중백운대에 섰다.

오르는 동안 반대쪽에서 내려오는 산객 한 분을 만났을뿐 중백운대는 온통 내 차지다.

 

 

중백운대는 멀리서 보면 제법 뾰쪽한 봉우리인데 실제 올라보면 절벽위의 펑퍼짐한 암봉이다.

그 절벽 바위에는 그림 같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수백년은 되었을듯 한 소나무들이다.

 

 

중백운대는 높이가 510m다.

건너편 의상대등이 조망되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중백운대는 하백운대와는 달리 정상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구름과 어우러진 풍경을 의미하는 3개의 백운대 중 가운데 봉우리인 중백운대를 고려말 고승인 보우선사는

"소요산 위의 흰구름은 떠오른 달과 함께 노닌다.

맑은 바람 불어오니 상쾌하여라.

기묘한 경치 더욱 좋구나."라고 노래했다고 한다.

 

 

아무튼 옛날 시조가 어울리는 인적 없는 풍경 속에서 나는 사진 놀이를 한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상백운대를 향해서 길을 나섰다.

 

 

상백운대를 향해서 가는 길에도 그림같은 소나무가 연신 발길을 잡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소나무들은 척박한 바위틈에 터를 잡았다.

생존 경쟁에서 다른 활엽수들에게 밀려난 것이다.

 

 

소나무는 솔방울 씨앗으로 번식을 하는데 그 씨앗이 움트기 위해서는 충분한 햇볕이 필요하다고 한다.

옛날에는 나무들을 땔감으로 썼기때문에 민둥산 형식이어서 그 솔방울이 발아하기 좋은 조건이었지만 지금은 활엽수 낙엽이 두껍게 덥고 있어서 발아 조건이 되지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발아가 용이한 바위틈에서 싹이 튼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요즘 산에서 큰 소나무 아래 아기 소나무는 볼 수가 없다.

 

 

중백운대에서 상백운대까지는 600m의 거리다.

선녀탕 삼거리를 지나서 가파른 오르막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걷기 좋은 능선길이다.

 

 

따사로운 햇살에 철지난 빛바랜 단풍잎이 나름 운치있다.

그런데 상백운대 정상이 가까워질 무렵 칼바람이 불고 추위가 엄습해 왔다.

 

 

상백운대도 암봉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평범한 정상이다.

상백운대는 높이가 559m다.

태조 이성계가 왕자의 난으로 상왕에 봉해진 후 이 곳 소요산 아래에 행궁을 짓고 머물렀다.

그때 태조가 백운대에 올라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회한을 달랬다고 한다.

 

 

이제 상백운대를 지나 칼바위 능선을 향해서 간다.

 

 

칼바위와 소나무가 어설픈 조화를 이루고 있는 칼바위능선에 초겨울 칼바람이 불어댄다.

칼바위에 칼바람.

조금 무시무시한 산길이다.

 

 

바위가 칼날처럼 날카롭게 서있다고 해서 칼바위 능선이라고 부르게된 칼바위 능선은 조금 위험한 구간이기는 하지만 나름 소요산의 명소 중에 한 곳이기도 하다.

 

 

그 날카로운 칼바위들 사이에도 어김없이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터를 잡고 있다.

정말 소나무들의 생존 능력은 경이롭다.

 

 

영양분은 두말 할 것도 없고 생존에 필수인 수분 공급마져도 쉽지 않을 환경.

그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낸 소나무는 대부분 예술적으로 생겼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예술 소나무와 함께 사진 놀이를 한다.

 

 

수형은 물론 표피까지 말그대로 숭고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소나무다.

모든 나무의 표피는 과학적이다.

그중에 소나무 표피는 예술적이기까지 하다.

이 소나무는 그 예술의 경지에 이른 소나무 껍질을 자랑하고 있다.

 

 

산객이 많은 날이면 너도나도 사진 찍으려고 아우성일 명품 소나무다.

그러나 오늘은 오고가는 사람이 없어서 방해 받지 않고 사진 작업을 한다.

그러고도 부족해서 점심 대용으로 준비한 고구마와 커피로 점심을 먹고 다시 한 참을 노닐었다.

 

 

 

둘 인듯 하나 인듯,  누워있는 듯 서있는 듯, 보는 방향에 따라서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예술 소나무를 두고 다시 길을 간다.

 

 

칼바위 구간은 500여m다.

예술 소나무를 지나고도 그 칼바위 구간을 지나는 동안 다양한 생애를 살아낸 소나무 풍경은 계속되었다.

 

 

산행 4시간째.

칼바위능선이 끝나고 소나무마저 없는 산길은 더욱 쓸쓸해졌다.

이제 칼바위 구간이 끝나고 네번째 봉우리인 나한봉을 오른다.

 

 

산길은 다시 가파라졌다.

그래도 아직은 색감을 간직하고 있는 단풍숲 사이로 초겨울의 짧은 해가 벌써 기울고 있다.

괜히 마음이 조급해 졌다.

 

 

상백운대에서 나한대까지는 1.3km쯤의 거리이지만 칼바위 능선을 비롯한 대부분의 구간이 난코스다.

더군다나 체력이 고갈되어 갈 쯤이라서 더욱 힘이 들었다.

이제 나한대 정상부를 향한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지나 온 능선이다.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나한대에 도착했다.

오늘 네번째로  오른 봉우리인 나한대는 높이로는 571m로 소요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나한'이란 불교에서 해탈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를 말한다.

자재암이 있어서 주변의 봉우리들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불교식 이름인 나한대라는 봉우리 이름을 지은것이라고 한다.

 

 

나한대에서 본 의상대다.

나한대에서 200여m 거리에 있지만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하는 봉우리다.

 

 

그래서 거리는 짧지만 의상대 오르는 길도 만만치가 않았다.

 

 

이제 소요산의 최고봉 의상대의 마지막 계단을 오른다.

역시 최고봉 다운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동두천 시내 방향이다.

마침 해질녘 빛내림이 동두천 시내를 비추고 있다.

 

 

드디어 소요산의 최고봉인 의상대에 도착했다.

역시 정상 답게 조망이 일품이다.

사방의 조망은 물론 내가 지나온 네개의 봉우리가 모두 한 눈에 들어왔다.

 

 

의상대는 소요산의 주봉으로 높이는 587m다.

조선의 태조가 소요산에 머물며 자재암을 크게 일으킨 후 자재암을 창건한 원효의 수행 동반자인 의상을 기리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란다.

 

 

파노라마로 담아 본 지나온 4개의 봉우리들이다.

좌로부터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나한대다.

 

 

유유히 떠가는 구름.

일몰 풍경이 아름다울것 같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하늘이다.

생각 같아서는 낙조를 보고 싶었지만 갈길이 멀어서 그냥 포기하고 마지막 봉우리인 공주봉을 향해서 간다.

 

 

마지막 봉우리인 공주봉까지는 다시 1.2km쯤을 더 가야한다.

갈길은 멀고 해는 기울어가고 있다.

그래서 공주봉을 포기 할까 생각하다가 조금 늦더라도 애초 계획대로 오르기로 한다.

 

 

의상대에서 공주봉 오르는 길은 거리는 좀 멀지만 난이도는 보통이다.

 

 

비교적 완만하던 등산로가 공주봉 바로 아래에서 급격히 가파라졌다.

 

 

그렇게 공주봉에 올라서자 해가 일몰을 준비하고 있었다.

환상적인 일몰 풍경이다.

그러나 이제 내려갈 일이 걱정이다.

 

 

일몰을 감상하고 내려가기에는 너무 늦고 그냥 내려가기에는 아쉽고.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데 산객 한 분이 올라오셨다.

밤길 동행자가 생긴것이다.

연세는 나보다 아홉살이나 많은 분이신데 대단한 체력을 가지셨다.

 

 

드디어 해가 하늘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환상적인 일몰 풍경이다.

그래도 동행자 한 분이 생겨서 조금 여유롭게 일몰 감상을 한다.

 

 

공주봉은 높이가 526m로 요석공주를 기리는 뜻으로 붙여진 명칭이다.

 

 

일몰이 끝나기 전에 서둘러 하산을 했는데도 산길은 어느새 어두워졌다.

그래서 휴대폰 후레쉬를 켜들고 하산해야 했다.

같이 하산하게 된 분은 연세가 70세가 훨씬 넘었는데도 잘 내려가신다.

후레쉬도 준비할 정도로 대단한 산객 이셨다.

아무튼 어둑해진 하산길이 지루하고 힘들기는 했지만 산행 만족도는 좋았다.

오랜만에 산정에서 아름다운 일몰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요산은 가을 단풍철에 올라야 제 맛 일듯 하다.

 

 

ㅡ2021.11.23.소요산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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