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3. 15:29ㆍ오르다/100대명산
위치: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몇년전 산림청선정 100대명산을 완등했다.
요즘 그 산행 기록을 정리하다보니 워낙 오랜기간에 걸쳐셔 했기때문에 기억도 희미하고 사진도 없는 산들이 많다.
그래서 속칭 땜방 산행을 하는중이다.
그중에 오늘은 명성산에 오른다.
명성산은 수도권의 억새 명산이다.
거기에다 산정호수의 명성까지 더해져서 유명새가 대단한 산이다.
아니나다를까 유명한 산 답게 산행 들머리는 상가가 줄지어 들어서 있다.
덕분에 나도 손쉽게 김밥 두 줄을 사서 배낭에 넣고 산행을 시작한다.
비선폭포
상가지역이 끝나고 산행 시작과 동시에 나타나는 폭포다.
너무 빨리 나오는 명소라서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비선(飛仙)이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폭포다.
비선폭포 상부에서는 뭔가 촬영을 하는 모양이다.
좋은 포토 포인트를 점령하고 촬영을 하는 바람에 나는 사이드에서 대충 사진을 찍어야 했다.
비선폭포는 폭포 전체가 하나의 통바위다.
통바위에 물길을 내는 물의 위력.
그래서 더 아름답게 보이는 폭포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 가장 비선(飛仙), 다시 말하면 신선 혹은 선녀가 올라간다는 이름에 걸맞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선폭포를 지나면 책바위코스와 억새밭 코스로 나뉘는 삼거리가 나온다.
책바위코스는 다이나믹한 암봉타기를 해야하는 코스라서 노약자는 피해야 한다.
나도 요즘 팔목 상태가 좋지 않아서 평범한 억새밭 코스를 택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잘한 선택이었다는것을 깨닫는다.
계곡과 함께하는 등산로의 고도가 조금씩 높아질수록 계곡과 어우러진 단풍 풍경이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고도가 조금씩 높아질수록 서서히 물들어가는 단풍길.
아직도 길은 평지 수준이다.
그리고 서서히 단풍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덕분에 억새 산행이란 생각으로 왔는데 의외로 아름다운 절정의 단풍 산행을 한다.
올해 단풍이 곱지않다고들 하지만 그것도 전체적인 현상은 아닌 모양이다.
명성산의 단풍은 의외로 고왔다.
뜻하지않았던 선물을 받아든 기분이다.
그 멋진 단풍 풍경에 나의 발걸음은 마냥 더뎌지기만 했다.
하긴 즐기러 다니는 산인데 경쟁하듯 빨리 오르는것 보다는 천천히 힐링하며 오르는게 더 좋은게 아닐까?
단풍 삼매경에 빠져서 쉬엄쉬엄 걷는 중간에 시주를 받고 있는 스님들을 만났다.
한 스님의 병환을 치료할 목적이라고 한다.
뭐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좋은 마음으로 지갑에 있던 잔돈을 시주했다.
이제 길은 서서히 경사도를 높혀가고 있다.
그 등산로 주변의 나무들은 햇볕의 양에 따라서 곱게 물들기도 하고 아직 한 여름의 푸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단풍이 여름과 가을을 넘나들다가 어느 순간 만추의 풍경으로 접어들었다.
그 만추의 풍경 속으로 산객들이 소란스럽게 걸어들어가고 있다.
그에 질새라 등산로 옆 계곡에서도 정겨운 물소리가 재잘재잘 들려왔다.
이윽고 그 물소리가 나는 등산로와 나란히 하는 계곡으로 눈을 돌린다.
계곡에는 등산로 주변 보다 훨씬 화려한 단풍이 계곡의 물 웅덩이마다에 반영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 계곡 풍경에 홀린듯 등산로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계곡을 따라 걷는다.
정규 등산로는 아니었지만 걷기에는 불편이 없었다.
이윽고 이름이 없는건지 내가 이름을 알지못하는 것인지 제법 그럴싸한 폭포도 만났다.
아무튼 수량만 좀 많다면 이름 있는 그 어떤 폭포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폭포다.
이름없는 폭포를 뒤로하고 다시 등산로에 올라섰다.
계곡을 걷는 사이 등산로 주변 단풍도 어느새 최고의 절정을 뽐내고 있었다.
아침 햇살에 그 절정의 단풍이 화사함을 발산하고 있다.
역시 단풍은 역광이 아름답다.
그것도 오전 10시와 오후 3시쯤 비스듬이 사선으로 통과하는 햇빛에 투영되는 단풍은
실제로는 좀 꾀죄죄한 단풍도 화사하게 보인다.
누가 올해 단풍이 곱지 않다고 말을 했던가?
그 말에 전혀 동의 할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아직까지는 억새산행을 온게 아니라 단풍산행을 온 것 같은 착각을 해도 좋을듯 한 풍경이 계속되고 있다.
명성산의 재발견인 셈이다.
그리고 이제 고도는 제법 높아졌지만 등산로는 아직 거의 무장애 길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경로우대 길이다.
등산로만 걷기 좋은게 아니다.
단풍 풍경도 환상적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정도 푸르름이 약간 남아있는 시기의 단풍을 가장 좋아한다.
나는 이맘때의 단풍을 '싱그러운 단풍'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좀 표현이 맞지 않은것 같긴 하지만 이 정도의 단풍에서는 온갖 색깔에 싱그러움까지 곁들여져서 좋은 것이다.
잠시 단풍 삼매경에 빠져보자.
이제 2km지점을 통과했다.
상동주차장에서 억새밭 정자까지는 3.9km다.
이정표에는 1시간 반쯤 걸리는것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길이 좋아서 조금 빡세게 오르면 가능할것 같기도 하지만 여기저기 카메라 들이대면서 오르는 내게는 넘사벽이다.
다시 계곡과 등산로를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오르기를 반복한다.
그러다보니 산행인지 사진 놀이인지 구분이 되지않았다.
등룡폭포.
그렇게 산행인듯 트레킹인듯 걷다보니 도착한 등룡폭포다.
등룡폭포는 말그대로 용이 승천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붉은 단풍사이로 10여m의 높이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등룡폭포 상부다.
등룡폭포는 2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부에서 3m쯤 높이에서 떨어진 물줄기가 한 번 용트림을 하고 다시 10여m 하부 폭포에서 그 기세를 몰아 더욱 힘차게 떨어진다.
두개의 폭포아래 형성되어 있는 소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넓고 깊다.
등룡폭포를 지나고도 한동안 등산로는 계곡과 함께한다.
명성산 계곡은 보통의 계곡과 달리 대부분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단풍과의 어우러짐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다시 이름없는 폭포를 만났다.
이 폭포 역시 수량만 풍부했더라면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했을 폭포다.
폭포뿐아니라 계곡 자체가 사진놀이 하기에 딱 좋았다.
그래서 다시 계곡을 따라 걷는다.
뭐 이쯤되면 산행이라기 보다는 출사인 셈이다.
이번에는 단풍 삼매경이 아니라 가을계곡 삼매경에 잠시 빠져보자.
이제 계곡과 나란히 하던 등산로가 가파라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등산로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뀌었다.
길도 거칠어지고 오르막도 심해져서 모처럼 숨이 차기 시작했다.
덩달아서 주변 풍경도 울긋불긋 단풍 풍경에서 하늘거리는 억새 풍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억새밭 바로 직전 최고의 난이도 구간을 오른다.
그 거친 산길을 요즘 보기드문 다둥이 가족이 장난치듯 나를 앞질러 올라간다.
삼남매 가족.
내가 어렸을땐 적은 가족인데 지금은 다둥이 가족으로 불린다.
격세지감이다.
사진놀이 하느라고 천천히 오른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난이도가 낮은 것인지 제대로 땀 한 번 흘리지않은것 같은데 억새밭에 도착했다.
광활한 억새밭.
광활한 억새밭에 억새꽃이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억새는 벌써 감상하기 좋은 절정의 시기는 지난것 같다.
억새도 생각보다 절정의 시기가 짧다.
하긴 단풍도 억새도 그렇지만 그외 모든 세상만사가 무작정 기다려주지 않는다는것은 진리인것 같다.
억새밭에 들어서서도 꽤 많이 올라야 정상인 팔각정에 오를 수 있다.
나는 철지난 억새밭을 조금은 실망감을 안고 무심하게 오른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낭만적으로 걷는 명성산의 억새밭은
사실 생각보다 그렇게 낭만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인 6.25 한국전쟁때의 일이다.
그때 이곳 명성산에서 전투가 치열했다고 한다.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의 이 곳 억새밭에 엄청난 포탄이 쏟아졌다고 한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한때 초토화된 땅에 화전민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 .
그러다가 화전이 금지되면서 화전민들이 떠나고 그 곳에 억새가 둥지를 튼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억새만 있었던건 아니다.
지금 모습이야 지방자치단체에서 억새만 살 수 있도록 조성한 결과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억새밭에서는 나무 한그루도 의외의 대접을 받는다.
그늘이 귀한 억새밭에서 유일하게 그늘을 제공해 주기때문이다.
아무튼 극진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희귀하고 볼 일이다.
이제 편의상 정상으로 삼는 팔각정에 올라섰다.
원래 정상은 여기서도 무려 2시간쯤 더 가야한다.
그러나 대부분 여기서 멈춘다.
그래서 아마 정상석을 여기에 세운 모양이다.
팔각정에서 나는 다시 정상을 향해서 간다.
정상 방향으로 5분쯤 오르면 나오는 뷰 포인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도 오르지 않는다.
다시 뷰포인트에서 5분쯤 조금 더 오르자 제법 정상 느낌의 암봉이 나오고
절벽에 곱게 자란 소나무 너머로 산정호수가 조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능선길은 마치 성곽같은 바위능선 길이다.
이 바위길 양옆은 마치 성곽이라도 되는듯 천길 낭떠러지다.
절묘한 자연 성곽인 셈이다.
바위절벽에서 자라는 소나무.
멀리 전방지역을 실감케하는 군부대 훈련장이 산 하나를 온통 거미줄처럼 난도질 해 놓았다.
그렇게 실제 정상을 향해서 1시간쯤 진행하다가 아무래도 하산시간이 늦을것 같아서 그냥 되돌아 와야 했다.
아래에서 단풍사진 찍느라고 너무 시간을 지체한 때문이다.
다시 팔각정을 지나 하산은 책바위 코스로 잡았다.
책바위코스에 접어드는 시간,
해는 벌써 기울기 시작하고 책바위 코스엔 산객도 벌써 끊겼다.
명성산은 우리말로 표현하면 '울음산'이다.
산이 운다는 뜻이다.
거기에는 크케 두가지 유래가 있다.
궁예가 왕건에게 패해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통곡했다고 해서 울음산이라고 했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신라의 마의 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기위해 이 산을 지날때 산이 울었다고 해서 명성산(鳴聲山)이라고 불려졌다는 설이다.
우리나라 설화가 대부분 그렇듯 울었다는 의미도 여러가지로 풀이되고 있다.
궁예가 우는 소리에 산이 따라 울었다는 설, 마의 태자가 지날때 산새들이 울었다는 설등 조금씩 다르게 전해져 오고 있지만 큰 줄기는 '울음'에 있는것 같다.
책바위 코스의 하산길 초반은 걷기좋은 능선길이다.
거기에다 흙길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하산 시작 채 10분도 되지않아서 거친 암반길이 나왔다.
급기야 쇠줄이 나오고 급경사의 난코스가 시작되었다.
정말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급경사 계단이다.
그 긴 계단을 내려서자 다시 삼거리가 나왔다.
자인사와 책바위 코스로 갈라지는 책바위고개 삼거리다.
여기서 거칠고 가파르기로 유명한 자인사 코스를 택했다.
거리가 조금 가까워서 빨리 내려갈 욕심에서다.
책바위고개에서 자인사까지는 거리상으로 1.4km밖에 되지않는다.
그러나 내려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잘 못된 선택이라는걸 알았다.
돌계단에다 거의 직벽에 가까운 길이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볼거리도 거의 없는 음침하고 마른 골짜기다.
그래도 신기한건 그 돌무데기에서도 나무가 아름드리 크기로 자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길에 인적이 있을리가 없지.
혼자만의 사투라도 하듯 내려밟고 또 내려밟아도 끝이 나오지 않는다.
사방이 온통 바위와 돌무더기뿐.
이런 길에 돌계단을 조성했다는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행을 하면서 되도록이면 좋은 장면 위주로 사진을 찍는데 이 곳 자인사 코스에서는 도저히 그럴수가 없다.
아니 그럴수가 없는것이 아니라 좋은 장면이 없다는 표현이 더 맞을것 같다.
그렇게 돌무더기 길 1.4km를 1시간30분이나 걸려 내려왔다.
그 1.4km가 처음부터 끝까지 돌계단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절대 오르지 말아야 할 코스다.
모처럼 만난 흙길이다.
그나마 이 흙길은 사실상의 하산 종료지점인 자인사까지 100여m가 전부다.
천신만고 끝에 자인사에 도착했다.
해는 벌써 자취를 감춘 뒤다.
원래 자인사는 왕건과 궁예, 두사람 모두에게 인연이 있는 사찰이지만
지금 있는 건물들은 그리 오래된 건물은 아니다.
왕건이 기도를 올렸다는 바위.
왕건이 궁예의 명을 받아
이바위에서 제를 올리고 후백제를 공격하여 승전하였다는 설화가 전해져오는 바위다.
자인사에서도 주차장까지 20여분을 더 걸어야 했다.
결과적으로는 짧은 코스를 택했던게 완전히 실패를 한 셈이다.
아무튼 자인사 코스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절대 이용하지 말아야 할 코스다.
*산행코스: 상동주차장 -비선폭포 -등룡폭포 -팔각정 -삼각봉 -팔각정 -책바위고개 -자인사 -주차장(7.5km )
ㅡ20210.10.26.명성산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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