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 기차여행(2)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외관.

2025. 3. 28. 01:10세상은 넓다/남유럽(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스페인 여행]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 기차여행(1)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내부관람.

▲마드리드 생활 73일 차.2박 3일 일정으로 바르셀로나 여행을 시작했다.두 지역의 거리는 무려 620km나 된다.자동차로 가려면 6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다.그래서 고속열차를 이용했다.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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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내부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가늘게 내리던 빗줄기가 더 강해졌다.

그래서 외관 촬영을 그만두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 잠시 시간을 내서 다시 외관 촬영을 했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외관은 짓기 시작한 지 1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공사 중이다.

원래 가우디의 사망 100주기인 내년에 완공 예정이었지만

2030년에서 다시 2035년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 독창적인 성당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원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당시 바르셀로나의 한 출판업자가 바르셀로나만의 대성당을 짓자며 모금운동을 벌이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입장 수입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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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성당 짓기는  1882년 가우디의 스승이었던 비야르(F. de P. Villar)가

좋은 뜻이라며 동참하면서 본격화 되었다.

그는  무보수로 성당 설계를 시작했다.

하지만 무조건 싸게 지으려고만 하는 천주교 교구에 질려서 1년 만에 포기하고

자신의 제자였던 가우디를 후임자로 추천한다.

가우디는 인수하자마자 재설계에 들어갔다.

 

 

 

 

 

▲재설계에 들어간 당시의 가우디는 31세였다.

그는 기존의 고딕양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곡선과 기하학적인 구조를 활용한 독창적인 건축을 시도했다.

그때부터 죽는 날까지 43년간 이 공사에 남은 인생을 모두 바쳤다고 한다.

그는 공사 현장에서 직접 인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설계도를 그려 나갔고,

마지막 10년 동안은 아예 작업실을 현장으로 옮겨 인부들과 함께 숙식하면서까지 성당 건축에 몰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1926년 불의의 사고로 그는 결국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해는 자신이 지은 이 성당의 지하 납골묘에 안장되었다.

원래 이 납골묘에는 성인이나 왕족의 유해만 안치될 수 있는데, 로마 교황청에서 그의 신앙심과 업적을 높이 사서 허가해 준 것이란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18개의 탑이 마치 탑들의 숲처럼 솟아있다.

그 18개의 탑은 각각 예수, 성모 마리아, 그리고 12 사도와 4 복음서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중에 가장 높은 탑이 예수의 탑으로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172.5m란다.

 

 

▲탄생의 파사드.

예수 탄생의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으며 생명과 희망을 의미한다고 한다.

파밀리아 성당에는 총 3개의 파사드, 즉 3개의 주 출입구가 있다.

각각 ‘예수 탄생’, ‘예수 수난’, ‘예수 영광’을 주제로 설계되었다.

이 중 ‘예수 탄생’의 파사드는 가우디가 생전에 직접 완성시킨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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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파사드.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표현하고 있으며 섬세한 조각의 탄생의 파사드와 달리 간결하고 강렬한 표현으로

고통의 의미를 더욱 부각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아직 완공되지 않은 예수의 부활과 영광을 의미하는 영광의 파사드가 있다.

 

 

▲풍요를 상징하는 과일들.

 

 

▲파밀리아 성당에서 진행된 마라톤 대회.

아무튼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위용은 대단했다.

섬세하기도 하고, 간결하기도 한 수많은 탑과 조각들.

어떻게 설계를 했으며 또 시공은 어떻게 했을까?

그건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보고도 믿기지 않은 불가사의 한 종합예술이었다.

 

ㅡ2025.03.16.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ㅡ.

[스페인에서 3달 살기D+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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