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 17:06ㆍ세상은 넓다/서유럽
▲로마관광을 마치고 예술의 도시 피렌체로 가는 길.
차창밖에 펼쳐진 해 질 녘 이태리 들녘은 마치 수많은 서양화가 전시된 듯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들녘과 비슷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그림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우리나라의 마을이나 들이 산 아래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반해서
이곳 이태리의 마을들은 산 위에 성처럼 자리 잡고 있어서 서다.
고대에 전쟁을 많이 해서 적들의 침입을 쉽게 방어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단다.
그렇게 서양화를 감상하듯 창밖 풍경에 정신이 팔린 사이
우리를 태운 버스는 5시간의 긴 여정을 끝내고 피렌체에 도착했다.
▲피렌체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르네상스가 활짝 핀 도시라는 의미인 셈이다.
그래서 피렌체를 이르는 표현도 다양하다.
문화 예술의 도시, 살아있는 박물관, 살아있는 미술관, 건축백화점,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두오모.
가장 먼저 방문한 피렌체 두오모는 피렌체 여행의 시작점이다.
정식 이름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다.
1296년에 시작해서 140년 후 인 1436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성당의 모든 벽면은 그냥 밋밋한 공간이 없다.
정교한 문양과 기둥.
마치 동물의 세밀화를 보는 듯했다.
어떻게 저 많은 선과 면을 설계했을지.
그중에서도 붉은 벽돌의 돔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건축기술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돔 이름이 아예 설계자의 이름인 '브루넬레스키의 돔'이란다.
▲건물의 어느 곳을 보아도 마치 꽃을 보는 듯했다.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수수하지도 않은 꽃.
한 가지 아쉬운 건 워낙 규모가 커서 한 장면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단테의 집.
이탈리아 대표 시인 단테의 집이다.
단테는 르네상스 시대의 문예 부흥의 선구자로 현대 이탈리아어의 기초를 다졌다고 한다.
옛날 단테의 대표작 '신곡'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재미를 붙일 수 없었다.
생활풍속이 다르기 때문에 문장이 속속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다.
아마도 지금 새로 번역된 책은 좀 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얼마 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작품들도 외국인들이 읽을 때는 그렇지 않았을는지.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강 작가의 작품을 번역한 번역가가 우리 정서를 잘 이해해서
거의 완벽한 의사 전달이 가능했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엄청난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벽에 세워진 단테의 흉상과 바닥에 부조된 단테의 얼굴.
단테도 고난의 생을 살았다.
뿐만 아니라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이야기는 한 편의 대서사시다.
그래서 단테의 인생 자체가 소설 같다.
다음은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이야기다.
단테는 9살 때 1살 아래인 베아트리체를 베키오 다리에서 우연히 만난다.
베아트리체를 본 단테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했다.
그냥 단순히 반한게 아니라 사랑과 찬미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 만남 이후 9년 만에 성당 앞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리고 18세에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결혼생활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베아트리체가 24살에 요절하고 만 것이다.
이후 단테는 그녀를 그의 대표작 '신곡'에 담는다.
세기의 사랑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과 반디넬리의 헬라클래스와 카쿠스 상.
단테의 집 방문을 마치고 시뇨리아 광장에 들어섰다.
시뇨리아 광장은 중세 이후 피렌체의 행정 중심이라고 한다.
지금도 시청사로 사용하고 있는 베키오 궁전이 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 조각가들의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야외 박물관인 셈이다.
그러나 다비드 상 등 대부분의 유명 조각상들은 진품이 아니라 모조품이라고 한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만남으로 유명한 베키오 다리.
▲피렌체 시내 전경.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의 도시였다고 한다.
은행가로 출발한 메디치 가문은 정치, 경제, 종교를 장악하게 된다.
이후 교황을 3 명이나 배출했으며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수많은 문화 예술가와 성직자등을 지원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교회와 도서관, 병원 건립등의 자금도 아낌없이 지원했단다.
고리대금업 등으로 개처럼 막대한 돈을 벌었으나 쓰기는 정승처럼 썼던 모양이다.
그래서 정치권력을 무려 300여 년이나 유지했다고 한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장기 집권인 셈이다.
부자는 3대를 넘기지 못한다는 속담도 메디치 가문에게는 통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무튼 단테, 미켈란젤로, 네오나르도 다빈치 등 걸출한 인물들의 고향 피렌체는
예술에 의한,
예술을 위한,
예술의 도시였다.
거의 완벽하리만큼 잘 보존된 중세도시는
우리를 500 년쯤 과거의 세상을 구경시켜 주었다.
ㅡ2007.10.02.피렌체.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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