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퀴나무와 아버지

2020. 12. 3. 19:17photo essay ㅡ생각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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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퀴나무ㅡ

정확히 말하면 소나무 낙엽을 갈퀴로 긁어서 모은 뗄감을 이르는 말이다.

사전에는 갈퀴로 긁어모은 검불,낙엽,솔가리등의 땔나무라고 되어있지만

어렸을때 고향에서 일컫던 갈퀴나무는 솔가리땔감으로 통했다.

그시절 농사일,가사일에 등골이 빠지셨던 어머님을 도와드리는 유일한 효도가

아궁이에 불 때는것 도와드리는 것이었다.

그때 갈퀴나무는 내 기억에 의하면 땔감 중에는 단연 최고였던것 같다.

송진성분이 있어서 천천히 오래 타기때문에 불똥만 살짝살짝 털어주면 되어서

불 때기에 편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타면서 나는 향기가 일품었다.

진한 솔향기와 연기냄새가 적당히 어우러진 그 냄새는

이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추억의 향기가 되었다.

뿐만아니라 타고난 재의 열기도 오래가서 할머니 화롯불로 쓰기에도 좋았고

고구마 구워먹기에도 최고였다.

 

 

 

그래서 그때는 동네 주변 산에서는 솔잎 하나 보기가 쉽지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그러다가 세상이 변해서 

요즘은 산에 가면 그때 그 귀하디 귀했던 솔잎이 양탄자처럼 깔려있다.

그럴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아버님 생각에 젖는다.

동네 주변 산에서 찾을 수 없는 갈퀴나무를 얻기 위해서

아버님께서는 낮은 산이긴 하지만 산을 두개씩이나 넘어야 했다.

그 고난의 나무하는 길에 나도 몇번 따라갔었던 기억때문에

솔가리와 아버님이 연결된 것이다.

그렇게 산속 깊이 들어가도 소나무잎 갈퀴나무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에서 먼저 긁어 모아놓고 나는 그 나무를 지켜야 했고

 아버님은 더 멀리가서 조금씩 긁어모아 가져오시곤 했다.

깊은 산속 적막이 감도는 짐자리, 나무짐자리라고 했던 그곳을 지켜야했던

어린아이의 심정을 아버님은 아셨을까?

호랑이 이야기, 귀신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던 그시절 그때의 정서때문에

사실 좀 무서워었던 기억이 뚜렷하다.

그런데 그 어린나이에  사실 지킨다고 지켜지지도 않을텐데

아버님은 왜 어린 나를 데리고 가셨을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때이니까 아마도 7~8살때쯤이 아닐까싶다.

뭐 딱히 일 시킬 나이도 아닌데 아버님은 왜 날 데려가는걸 좋아하셨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사람 만나기 쉽지않은 깊은 산속에서 당신 혼자서 나무 하시는게 심심하셨던것은 아닐까?

아무튼 나는 그때 산에 따라나서는게 싫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따라가는게 왜 그리 좋았는지 모르겠다.

그때 이렇게 많은 솔잎이 쌓여있는곳을 혹여라도 만나면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듯 좋아하셨던 아버님.

오늘도 난 푹신하게 쌓인 솔잎을 밟으며 아버님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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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2020.12.03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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