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논에서

2022. 12. 31. 09:33photo essay ㅡ생각을 찍다.

▲겨울 논에 나가 보셨는지요?

삭막할 것 같은 겨울 논은 의외로 아름답습니다.

 

 

▲겨울 논을 걸어 보셨는지요?

겨울 논 걷기는 의외로 서정적입니다.

작은 얼음이 깨어지는 와그작 거리는 소리도 좋고,

푸른 초원을 걷듯 길이 없어서 아무 데나 발을 디딜 수 있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 들판 한 가운데에 서면 광야에 선 기분이지요.

나는 어렸을때 국민학교를 2km쯤 걸어 다녔습니다.

동네가 제법 큰 동네여서 수 십 명이 들판길을 걸어서 등하교를 했습니다.

그 시절 계절마다 바뀌는 들판 풍경은 영원히 잊히지 않은 어린 날의 추억이 되었지요.

봄이면 버들피리, 보리피리 꺾어 불며 다녔으며

여름이면 개구리 잡고, 보리를 구워 먹기도 했지요.

그중에 밀은 오래 씹으면 껌이 된다고 삼키지 않고 계속 씹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봄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들길은 황금들길이 됩니다.

그러면 풍성해진 들판만큼이나 어린 우리들의 마음도 덩달아 풍성해졌습니다.

들판길 걷는 내내 나락(벼)을 까먹으며 걸을 수 있으니까요.

요즘 아이들은 절대 알 수도, 알지도 못할 군것질거리였지요.

풍성한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등하굣길은 고난의 길이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지구 온난화로 겨울 날씨가 그렇게 춥지 않지만

5~60년 전 겨울 들판은 칼바람 쌩쌩부는 시베리아였지요.

거기에다 지금처럼 방한 옷이나 신발, 장갑등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온몸으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겨울이면 우리 마을 아이들은 대부분 볼이 트고 손이 갈라졌지요.

심지어는 동상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가장 위안이 되었던 건 텅 빈 들판이었습니다.

굳이 길로 돌아다니지 않고 논 가운데를 가로질러 지름길로 다닐 수 있어서지요.

지름길로 가는 걸 우리 시골 사투리로 '무찔러' 간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무찔러가면 그래도 등하교 시간이 꽤 단축되었지요.

그 시절 때로는 눈이 쌓여 뽀드득거리고, 얼음이 깨지며 와그작 거리는 소리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오늘 오랜만에 그 추억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ㅡ2022.12.30.본오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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