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11.경주 가볼만한곳,교촌마을의 봄(경주 최부자집)

2024. 4. 5. 16:37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

▲교촌마을은 말 그대로 학교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신라시대에 지금의 국립대학격인 국학이 세워지면서 그리 불렸다고 한다.

국학은 고려시대의 향학, 조선시대의 향교로 이어졌다.

그러나 교촌마을이 더욱 유명세를 탄 이유는 따로 있다.

경주 최부자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야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교 관람을 마치고 마을길로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최부자집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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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자집.

말이 최부자집이지 거의 궁궐 수준이었다.

이 거대한 저택들을 유지하고 보존해야 하는데도 꼭 좋은 일만 하고 살 수 있었을까?

부자가 천국에 간다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는데.

아무튼 그럼에도 좋은 미담이 넘쳐나는 걸 보면 대단한 절제와 베품이 있었음은 틀림없었던 듯하다.

▲마치 궁궐처럼 집 안에서도 담장이 있고 그 중간에 문이 있다.

그만큼 식솔도 많았을 터이다.

▲최부자집에서는 경주시에서 경주 최부자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었다.

부자가 3대를 넘기지 못한다는데

무려 12대 400년을 이어온 비결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최부자 정신을 계승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럼 최부자집은 어떻게 그 어렵다는 선한 부잣집이 되었을까?

그 비밀은 과학적인 농사와 베품의 실천이었다고 한다.

소출이 많이 나는 농법을 계발해서 남들보다 많은 수확을 했단다.

그리고 그 부를 움켜쥐지 않고 부를 베풀자 민심을 얻었고,

그 민심이 더 큰 부를 불러들이는 부의 선순환으로 이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절제와 베품을 위한 연구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여러 가지 가훈이 있다.

그중에서도 육훈은 거의 명언과도 같다.

▲육훈 중에서 가장 유명한 훈은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했는데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번째는 "재산은 만석 이상 지니지 마라."

너무 무리한 과욕을 버리라는 뜻이 아닐까?

▲세 번째는"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이다.

권력과 부를 동시에 취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오늘은 국회의원 사전투표일.

지금의 위정자들이 가장 새겨 들어야 할 훈인 듯하다.

▲네 번째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이다.

지금처럼 숙박업소나 외식업소가 거의 없었던 옛날.

이 이상 여행자들에게 좋은 베품이 또 있었을까?

▲다섯 번째"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이다.

이 또한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만들지 말라는 말.

▲마지막 여섯 번째"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이건 검소하라는 뜻일까?

아무튼 3대를 못 간다는 부자.

그런데도 부자 400 년이 그냥 이어져 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상의 육훈이 말해주고 있다.

▲최부자집을 둘러보고 있는 중국 관광객들.

▲경주향교와 최부자집으로 대변되는 교촌마을.

이번 경주여행에서 의외로 좋았던 여행지였다.

물론 이름만 들었지 처음 방문했던 여행지 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고즈넉한 한옥마을의 정취와 향교의 역사적인 이야기,

그리고 최부자집의 감동적인 훈훈한 이야기까지,

여행지로서는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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