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여행]화엄사(3)ㅡ화엄사 이야기

2023. 3. 26. 16:21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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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4 - [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사찰] - [구례여행]화엄사의 봄(1)

 

[구례여행]화엄사의 봄(1)

▲몇년만일까요? 수년만에 다시 화엄사를 찾았습니다. 봄맞이 여행인 셈이지요. ▲주차를 하고 다리를 건너야 화엄사 경내입니다. 봄이라고 하지만 계곡은 아직도 여전히 겨울입니다.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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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5 - [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사찰] - [구례여행]화엄사(2)ㅡ화엄사 홍매화에 물들다.

 

[구례여행]화엄사(2)ㅡ화엄사 홍매화에 물들다.

[구례여행]화엄사의 봄(1) ▲몇년만일까요? 수년만에 다시 화엄사를 찾았습니다. 봄맞이 여행인 셈이지요. ▲주차를 하고 다리를 건너야 화엄사 경내입니다. 봄이라고 하지만 계곡은 아직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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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전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보물 제299호 대웅전

▲절마당에서 이제 핵심 예불 공간으로 올라섭니다.

보물인 대웅전과 국보인 각황전을 중심으로

영산전, 나한전,원통전,명부전등의 예불 전각들이 들어서 있는 공간이지요.

▲대웅전 앞에서 본 각황전과 홍매화 나무입니다.

화엄사는 삼면이 부드러운 산으로 에워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위압적이지 않고 안온한 분위기의 절마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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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내부에는 2021년 국보로 지정된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다시 대웅전에서 각황전으로 이동합니다.

각황전의 단청하지 않은 무채색의 처마와 선홍빛 홍매화의 조화가 예술입니다.

▲원통전과 각황전 사이에는 요즘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홍매화가 우뚝 서 있습니다.

조선 숙종때 각황전을 건립하고 그 기념으로 심은 나무라지요.

그러니까 무려 300년을 지키고 서 있는 매화나무입니다.

▲오른쪽 끝에서부터 명부전, 대웅전, 영전, 원통전, 매화나무, 나한전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저 사이에 홍매화나무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각황전 뒤쪽으로는 국보 제35호인 사사자 삼층석탑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반대쪽에서 본 각황전과  홍매화입니다.

▲드디어 각황전 앞에 섰습니다.

단청을 하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전각이지요.

각황전은 1702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전각으로 국보 제67호입니다.

각황전 앞 석등 국보 제12호

▲신라 문무왕 때인 677년 의상대사가 조성한 석등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등이라지요.

그리고 석등의 꽃잎 문양은 3천 년 만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꽃이라고 합니다.

괜히 국보로 지정된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알고 봐야 더 대단하게 보이는 우리 문화재입니다.

사자탑 보물 제300호

▲원통전 앞 사자탑입니다.

역시 위의 석등과 같은 연대에 조성한 탑입니다.

탑을 이고 있는 4마리의 사자의 표정이 다 다르지요.

인간의 감정인 희로애락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대웅전을 돌아 뒷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절마당의 뒤꼍에서는 의외의 정감 있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요.

▲화엄사의 돌담은 마치 성곽처럼 튼실한 게 특징입니다.

▲대웅전 뒤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문입니다.

'광희문'

무슨 전각인지 알 수 없으나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가 봅니다.

▲정갈한 전각 앞에 능수매 한 그루가 화사한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잔디마당 한쪽에는 맑은 우물이 있고 그 위로 분재형 소나무가 드리워 저 있습니다.

▲능수매를 조금 더 가까이서 담아 보는데

이때 보살님이 나오시며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삼전'이라 불리는 곳으로 화엄사의 주지스님이 거처하시는 곳이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화엄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화엄사는 백제 성왕시대인 544년에 인도 스님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 의하면

연기조사는 바다를 헤엄치고 하늘을 나는 '연'이라는 동물을 타고 인도에서 왔다지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신통하게 여겨 법당을 짓습니다.

그리고 절이름을 '연기사'라 지으려 하자 연기조사는

자신은 화엄경을 설파하기 위해서 온 사람이니 절이름을 '화엄사'로 하기로 합니다.

▲이때 산 이름도 두류산에서 지리산(智利山)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한자 표기인 지리산(智異山)과는 다르지만...

이후 자장 법사와 원효, 의상, 도선, 의천 등 내노라하는

큰 스님들에 의해서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정유재란때 모두 불 타 버리고 맙니다.

화엄사도 어김없이 왜놈들의 만행이 저질러진 것이지요.

이후 다시 인조와 숙종 때 다시 짓게 됩니다.

▲이때 각황전 건립에 대한 설화도 있습니다.

왜놈들이 불태우기 전 원래 각황전 자리에 있던 전각은 '장육 전'이었다고 합니다.

그 장육전을 다시 지을 계획을 하고있는 계파스님이 꿈을 꿉니다.

꿈에 물을 담은 항아리와 밀가루를 담은 항아리에 차례로 손을 넣어서 밀가루가 묻지 않은 사람이

장육전 건립의 화주승이라는 계시를 받습니다.

▲그래서 1000여 명의 스님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시험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스님이 시험을 했으나 모두 밀가루가 묻어 나오지요.

그런데 마지막 한 스님의 손에 신기하게도 밀가루가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스님이 공양주 스님이 됩니다.

▲하지만 실제 그만한 능력이 없던 스님은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그래서 대웅전에 앉아 밤새 기도를 올리지요.

이때 문수보살이 나타나

"내일 아침 화주를 찾으러 떠나라.

그리고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권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절을 나서는데 일주문 앞에서 거지 노파를 가장 먼저 만납니다.

그런데 그 노파는 다름 아닌 오히려 절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누룽지등을 얻어가는 공양주였던 것입니다.

실망한 스님은 그래도 문수보살의 계시대로 거지 노파에게 큰 절을 하고 시주을 부탁합니다.

시주할 만한 게 없는 노파는 어쩔 줄을 몰라하지요.

그러나 아무 대안이 없던 노파는 스님의 전후 사정이야기를 듣고 감동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화엄사를 향해 합장하고 소원을 빕니다.

"문수보살이시어!  이 몸이 죽어서 왕궁에 태어나 큰 불사를 이루도록 가호를 내리소서!"

그리고 깊은 계곡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어느 날 스님이 한양의 궁궐 앞에서 어린 공주와 마주칩니다.

어찌 된 연유인지 어린 공주는 스님을 보자 달려와 반갑게 누더기 자락에 매달립니다.

이때까지 공주는 태어나서부터 한쪽 손을 쥔 채 펴지 않았다지요.

그런데 스님이 만지자 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손바닥에는 '장육전'이라 쓰여있었지요.

거지 노파가 공주로 환생한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숙종대왕은 스님을 만나 자초지종을 듣습니다.

그리고 감격하여 장육전을 건립하도록 하지요.

이후 장육전이 완성되자 각황전(覺皇殿)이란 사액을 내립니다.

그래서 장육전이 '부처님을 깨달은 임금'이란 뜻의 각황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은 화엄사 황매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ㅡ2023.03.22.화엄사.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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