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의 성지, 여주 고달사지

2023. 2. 18. 08:38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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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 뭐니 해도 쓸쓸함과 허무함을 대표하는 곳은 빈 절터가 아닐까요?

우리나라에는 빈 절터를 말하는 폐사지(廢寺地)가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

대부분 거대한 절터들이지요.

물론 작은 절터는 관리가 되지 않으니 집터로 혹은 농지로 변형되어 흔적도 없어졌지만

큰 절터는 일부러 관리한 때문인지 아니면 일반 민초들 눈에도 문화재 가치가 있는 듯하여

범접하지 않은 때문인지 비교적 온전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10년쯤 전이었을까요?

시원찮은 디카를 쓰다가 제법 고급 기종인 캐논 EOS 5D MarkⅡ로 업그레이드를 합니다.

새 차를 사면 드라이브하고 싶듯, 새 카메라도 사면 뭔가 찍어보고 싶지요.

그래서 마침 TV에서 본 고달사지로 달려갑니다.

 

400년 된 고달사지 느티나무

▲그렇게 1시간여 만에 도착한 고달사지는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허허로운 그 면적이 어림잡기도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주변에 그 어떠한 시설물도 없어서 더욱 황량해 보였지요.

오직 400년이 넘었다는 느티나무 한그루만이 그 넓은 황량한 빈터를 지키고 있는 듯

오뚝하게 서 있습니다.

 

▲느티나무 아래 차를 세우고 텅 빈 절터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허허로운 절터엔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돌들만이 잔설 속에서 무심히 뒹굴고 있습니다.

 

▲이 넓은 면적의 많은 건물들이 어떻게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었을까요?

그런 의문을 가지고 혼자서 탐방로를 걷습니다.

그렇게 걷다가 군데군데에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문화재들을 만납니다.

멀리서 볼 때는 이리저리 뒹구는 한갓 돌이라고 생각했던 돌들이 돌이 아니고

보물이고 문화재였던 것입니다.

 

경기도 유형문화제 제247호 여주고달사지석조

▲첫 번째 만나는 문화재입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석조입니다.

무엇에 쓰였던 물건이었을까요?

마치 말 구유처럼 생기기는 했는데 배수구가 있고,

모서리 부분에 문양까지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릇 씻는 용도쯤 아니었을까요?

아무튼 해설판에도 용도는 없습니다.

▲이제 석조를 지나 더 위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걷다가 제법 반듯하게 세워져 있는 석조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춥니다.

 

보물 제8호 고달사지 석조대좌

▲그리고 해설판을 들여다보다 깜짝 놀랍니다.

보물이었던 것이지요.

버려진 돌이 아니고 제멋대로 뒹구는 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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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위에 불상이 모셔져 있는 석조대좌라고 합니다.

그런데 불상은 없어지고 받침대만 있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보물로 지정된 건 워낙 문화재적인 가치가 높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석조대좌에서 다시 조금 더 올라가면 나오는 원종대사탑비입니다.

 

보물 제6호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원래는 거북등과 위에 얹혀있는 비석의 머리 사이에는

원종대사탑비가 있었는데 비석이 파손되어

현재 국립중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정말 정교한 거북등 문양 그리고 비석 머릿돌에 새겨진

두둥실 떠가는듯한 구름과 살아있는 듯한 용문양이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예술혼은 정말 대단합니다.

비석 하나에도 이토록 정성을 들여서 세웠으니.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에 있는 고달사지는

무려 5만 8천995㎡에 이르는 면적에 달하는 절터입니다.

일명 고달원(高達院)이라고도 불렸던 곳이지요.

 

▲통일신라 시대인 764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당시에는 그리 번창하지 않았으나 고려 광종 이후 역대왕들의 비호를 받아 번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절이 언제 어떠한 이유로 폐사가 되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 많은 전각들은 어찌 되었을까요?

그 많은 스님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이토록 큰 절이라면 그만큼 신도들도 많았을 텐데

어찌 폐사된 연유를 모를 수 있을까요?

아무튼 불가사의입니다.

 

고달사지 원종대사탑 보물 제7호

▲다시 너른 절터옆 낮은 산아래에 있는 탑으로 걸어갑니다.

흔적 없는 빈 절터를 지키고 있는 아름다운 탑.

그래도 이름은 있습니다.

원종대사탑입니다.

역시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탑이지요.

 

▲원종대사는 869년부터 958년까지 사셨던 스님입니다.

고려 광종의 총애를 받으며 고달사를 전성기로 만드셨다고 하지요.

 

고달사지 승탑 국보 제4호

▲그 원종대사탑 옆에는 더욱 놀랄만한 탑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재의 최고 등급인 국보입니다.

 

▲역시 천년도 훨씬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구름이 떠가는 듯하고 용이 금방이라도 승천할 듯합니다.

 

▲승탑에서 내려와 다시 공허함이 가득한 빈 절터를 걷습니다.

빈다는 것.

흔히 비워야 채울 수 있다고 하지요.

이 빈 절터에 나만의 아름답고 신심이 가득한 절마당을 머릿속으로나마 채워 봅니다.

역시 비어있어서 가능한 상상이지요.

 

▲그리고 보물이라도 줍듯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름 없는 돌들을 정성 들여 담아봅니다.

왠지 이 쓸쓸한 빈 절마당의 흙 한 줌, 돌 하나에도 엄청난 애환이 서려 있을 듯해서입니다.

 

ㅡ2013.01.28.고달사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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