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등산코스]무등산, 광주를 품다.(1)ㅡ서석대

2023. 10. 19. 09:43오르다/100대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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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무등산을 오릅니다.

무등산은 광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많이 오른 산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아직 올라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억새가 필 무렵이기도 하고, 마침 57년 만에 정상부를 개방한다는 소식도 있어서 결행한 산행입니다.

무등산은 그 무엇에도 비할데 없이 높은 산이라는 뜻이라고도 하고,

무등(無等) 즉 등급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신성한 산이라는 뜻이라고도 하죠.

지리적으로는 광주 광역시와 화순군, 담양군등에 걸쳐서 우뚝 서있는

웅장하지만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러운 독특한 산세의 산입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무진악 또는 무악이라 불렸으나

고려 때에 이르러서 서석산, 무등산등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무당산, 무덤산, 무정산 등으로 불렸으나 현재는 무등산으로 통일된 이름의 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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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의 보편적인 산행 들머리는 원효사(무등산장)와 증심사 입구입니다.

그중에 우리가 오늘 오를 코스는 원효사에서 시작하는 무등산 옛길코스입니다.

무등산 옛길은 옛 선조들이 올랐던 나무가 울창한 호젓한 숲길이죠.

증심사 코스에 비해서 비교적 완만해서 산행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광주시내에서 숙박을 하고 아침 7시가 조금 지나 원효사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이제 막 문을 연 식당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호젓한 초가을 아침 산길을 10분쯤 오르자 울타리가 쳐져있는 유적지가 나옵니다.

수년 전에 오를 때는 그냥 안내표지만 있었던 것 같은데 그사이 울타리를 쳐 놓았습니다.

그러나 유적지라고는 하지만 유적이 없는 제철유적지죠.

어떻게 이 곳에서 철을 만들었을까요?

안내표지의 설명에 의하면 계곡에 있는 사철(沙鐵), 즉 철 성분이 들어있는 모래에서

뽑아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곳은 임진왜란 때 충장공 김덕령 장군이 칼과 창을 만든 곳이라고 해서 

주검동유적(鑄劍洞遺蹟)이라고도 합니다.

충장공은 그뿐만아니라 이곳에서 의병활동과 거병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제공하고 무술을 연마, 수련했다고 하죠.

충장공 김덕령은 무등산이 낳은 비운의 장군입니다.

그래서 무등산 곳곳,그리고 광주시내 곳곳에서는 그의 흔적과 그의 향기가 살아 숨 쉬고 있죠.

▲그럼 충장공 김덕령 장군에 대해서 잠깐 알아 볼까요?

장군은 1,567년에 무등산 자락의 충효마을에서 태어나 무등산에서 말타기와 칼 쓰기 등 무예를 익힙니다.

이후 문무를 겸비한 김덕령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크고 작은 전공을 세우죠.

그러나 선조 29년 이몽학의 반란을 토벌하다가 역모에 가담했다는 무고로 투옥된 후

29세의 젊은 나이에 옥사하고 맙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그랬던 것처럼 모함을 당한 것이죠.

그렇게 죽은 후 60년이 지나서야 누명을 벗고 관직이 복직되어 충장공이라는 시호를 받게 됩니다.

아무튼 어렸을 때 아버님께서도 충장공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던 것 같은데

글로서 남길 만큼 정확한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뭐 "힘이 장사였던 김덕령의 겨드랑이에 깃털이 있었는데 그걸 뽑아버려서 힘이 약해졌다"는 정도의 기억뿐입니다.

▲정상부의 산등성이로 늦은 아침 해가 떠오릅니다.

그렇게 숲 사이로 아침해가 뜨는 상쾌한 아침 산길을 1시간쯤 걷습니다.

그렇지만 등산로는 아직까지도 숨이 찰 만큼 가파르지는 않습니다.

▲이제 산행 시작 후 2.5km쯤의 지점을 통과하는 중입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길은 제법 가팔라지고 간간히 단풍 든 나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서서히 가팔라지던 등산로가 어느 순간 급경사로 바뀌었습니다.

이 급경사 돌계단을 오르면 국립공원 입산 통제소가 있는 목교입니다.

이곳 입장 허용 시간은 오전 8시라고 합니다.

▲목교 쉼터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서석대를 향해서 갑니다.

여기서부터 서석대까지는 500 여 m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가파른 돌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최고의 난코스구간이죠.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구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멋진 풍경의 첫 번째는 중봉과 광주시내 조망 바위입니다.

전망바위에 올라서자 그림 같은 중봉의 억새능선 뒤로 광주 시내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망바위에서 50m쯤 오르면 본격적인 주상절리 풍경이 펼쳐집니다.

도저히 자연 현상으로 만들어졌다고 믿기지 않은 정교한 돌기둥.

불가사의 한 풍경 앞에서 잠시 넋을 놓습니다.

자연은 역시 신비스럽습니다.

자연은 역시 아름답습니다.

자연은 역시 위대합니다.

▲마치 고대 로마시대의 대리석 건축물을 보는 듯합니다.

아마도 그 시대의 그들이었다면 건축물 돌기둥으로 가져다 쓰지 않았을까요?

그렇지만 이 풍경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제 주상절리의 진수를 향해서 다시 오릅니다.

▲그리고 조금 더 오르면 나오는 서석대 전망대에서 본 서석대입니다.

그 모습이 마치 엿판의 엿가락 같습니다.

입석대와 함께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어 있는 서석대(瑞石臺)는

수정병풍처럼 둘러쳐진 상서로운 바위라는 뜻이라고 하죠.

한반도 육지에서 가장 큰 주상절리대로 알려진 서석대는

무등산 정상의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광주의 상징이자 무등산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광주광역시에는 서석초등학교, 서석동등 서석이라는 이름의 지명과 학교 이름, 그리고 상호 등이 많습니다. 

▲서석대 전망대를 지나 이제 서석대 정상으로 오릅니다.

▲서석대 정상부입니다.

깎아지른듯한 절벽 위 풍경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평화롭고 신비로운 풍경입니다.

파아란 하늘에 흰구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무튼 상서로운 풍경입니다.

산행 시작 3시간여 만에 서석대 정상에 섰습니다.

서석대 정상은 높이가 1,100m로 정상인 1,186m의 천왕봉보다 낮지만

그동안 정상 역할을 해왔던 봉우리입니다.

천왕봉이 군부대로 통제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서석대 정상부는 완만한 초원지대를 이루고 있어서 해발 1,100m가 넘는 산정이라는 느낌보다는

낮은 구릉지대의 초원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위압적인 다른 1000m급 정상과 달리 산객들과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동네 뒷산으로 소풍이라도 온 듯한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풍경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서석대 너머로 광주 시내 전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서석대는 8,700만 년에서 8,500만 년 전 화산분출에 의해서 만들어진 응회암이

1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를 거치면서 지표에 노출되기 시작하고 긴 시간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현재의 수려한 주상절리와 너덜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의 시간으로는 어림도 되지 않은 억겁의 세월이 만들어낸 걸작인 셈이죠.

▲막 물들기 시작한 서석대 정상 풍경입니다.

정상부의 단풍은 다음 주에 절정을 이룰 듯합니다.

이제 서석대 정상을 지나 무등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을 향해서 갑니다.

그동안 군부대가 있어서 통제되어 있던 구간이죠.

그런데 지난달에 57년 만에 상시 개방을 했다고 하는 구간입니다.

이어지는 무등산 이야기는 [천왕봉편]으로 계속됩니다.

 

 

ㅡ2023.10.11.무등산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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