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1. ㅡ13년전 하노이(1)

2024. 1. 21. 08:30세상은 넓다/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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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13년 전 소속 단체여행으로 떠난 베트남 여행기다.

그러니까 스마트폰도 없던 때,

사진 입문도 처음 했을 때의 사진을 활용한 여행기다.

14일 밤 20시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 시간으로 밤 22시 50분.

그러니까 2시간의 시차를 적용하면 4시간쯤의 비행 후 베트남에 도착한 셈이다.

그래서 바로 호텔로 향했다.

대부분의 패키지여행이 주로 아침에 도착해서 첫 일정을 시작하는데

그때 우리의 여행은 호텔 투숙으로 3박 5일의 베트남 여행을 시작했다.

첫 숙소인 한국계 호텔인 대우호텔은 당시의 베트남 수준과 달리

아주 청결하고 깨끗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고 첫 일정으로 바딘광장으로 향했다.

그날은 가랑비가 내리는 아침이었다.

가랑비 내리는 거리에 나선 우리 일행은 눈을 의심했다.

거리에는 자동차 대신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물밀듯이 밀려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은 베트남 체류 내내 계속되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은 어지럼을 느끼기도 했던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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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바딘광장.

바딘광장은 1945년 9월 2일 베트남의 국민적 영웅인 호찌민이

독립선언을 하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수립한 곳으로

주변에 호찌민의 영묘가 있으며

베트남 주석 집무실과 국회등의 시설이 밀접해 있다고 한다.

소탈한 모습의 호치민의 모습과 베트남 국기

▲먼저 베트남에서 국민적, 정신적으로 추앙받는 호치민의 영묘를 방문했다.

그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호치민의 시신이 방부 처리되어 유리관에 안치되어 있는 모습을 견문했다.

▲관광은 호수를 끼고돌면서 하게 되어 있었다.

호수를 끼고 주석 집무실과 호찌민 생가등이 있기 때문이다.

위의 노란 건물이 베트남 최고 권력자인 주석 집무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실 같은 곳인데

사회주의 국가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개방되어 있었다.

▲호숫가에 조성된 공원에는 열대지방 특유의 다양한 고목나무들이

말로만 듣던 베트남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고목나무들 중에는 겉과 속이 서로 다른 나무도 있다.

겉은 고무나무 계열의 나무인데 그 속에서는 야자나무가 살고 있는 것이다.

▲호찌민이 실제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1958년부터 11년 동안 살았던 주거지 겸 관저였다고 한다.

외관도 수수하지만 내부는 더욱 수수했다.

▲호치민이 사용했던 식탁.

호찌민의 검소한 생활은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평생을 1식 3찬으로 식사를 했다고.

▲한 기둥 사원(일주사).

우리나라의 일주문과 비슷한 이름이다.

한 개의 기둥 위에 절을 지었다고 해서 일주사인데

베트남 이 씨 왕조의 전설이 있는 곳이어서 베트남 국보 1 호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리 황제가 후사가 없어 걱정하던 차에

부처님이 연꽃을 타고 나타나서 사내아이를 주는 꿈을 꾸었단다.

꿈을 깨고 나서 결혼을 해 아들을 얻었고, 이에 감사하기 위해 지은 절이다.

원래는 나무 기둥이었으나 현재는 콘크리트로 대충 복원해 놓았다.

옛날에 우리 문화재가 그랬듯이....

아무튼 그래서 현지인들에게는 아이를 점지해 주는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 다음 방문지는 호찌민 박물관이다.

말이 박물관이지 기록물 전시장 정도였다.

호찌민이 워낙 검소하게 살았기 때문에 유품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 사진과 모형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호찌민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들른 곳은 대형마트였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하노이에서 제일 크다는 빅 G마트.

우리나라의 이마트보다도 규모는 더 큰 듯했다.

그러나 상품 수준은 형편이 없었던 기억.

▲마트는 공산품보다 농산물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두리안, 용과 등 생소한 열대과일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팔고 있는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 재래시장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구경하기도 쉽지 않을 전자제품들이다.

브라운관용 조그만 tv한대값이 2,120,000동이라고 적혀있다.

당시에 1달러에 2만 동이니까 우리 돈으로는 110,000원 정도인데

워낙 돈 값어치가 없다 보니 물건값이 어마어마했던 때다.

▲더욱 특별한 건 마트에 진열된 오토바이였다.

워낙 수요가 많다 보니 마트에서도 오토바이를 판매했다.

지금도 그럴까?

대형마트를 나와 다음은 근처의 재래시장으로 이동했다.

그 재래시장 방문기는 다음 편에서 다룰예정이다.

 

ㅡ2010.12.15.하노이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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