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진시황의 시안여행 제5화 진시황릉과 병마용갱

2023. 8. 21. 15:47세상은 넓다/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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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문지는 병마용갱으로 대변되는 진시황릉입니다.

인류 역사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 병마용갱은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부에 의해 우현히 발견되었다고 하죠.

우연히 발견된 토기 조각 하나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병마용갱 발굴의 시발점이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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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용갱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병마용갱은 그 자체를 박물관으로 조성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땅이 넓은 중국 답게 모든 것이 널찍널찍합니다.

▲현재도 발굴 중인 병마용들은 실제 있었던 대로 관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기는 그 규모나 숫자로 보면 그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듯도 합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고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한 진나라의 시황제는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되자 죽음에 대비한 여러 가지 행보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불로초를 찾는가 하면 죽음에 대비해서 무덤까지 조성하도록 합니다.

그 면적이 무려 50㎦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 넓은 면적에 갖가지 부장품을 묻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병마용갱입니다.

▲1974년 병마용갱은 시황제 사후 약 2,100년이나 지나서야 빛을 보게 됩니다.

지금은 무채색이지만 실제 발굴 당시에는 선명한 색이 칠해져 있었다고 합니다.

병마용은 키가 184cm에서 197cm로 큰 편이며 장군이 병사들보다 크게 만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병마용은 전사, 전차, 말, 장교, 곡예사, 역사, 악사 등 다양한 사람과 사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발굴된 4개의 갱도 중 3곳에 모두 8천여 점의 병사와 130 개의 전차, 520 점의 말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아직도 발굴이 되지 않은 상당수가 흙 속에 묻혀 있다고 합니다.

▲실제 크기로 조성된 황릉 내부입니다.

▲별도의 기록은 없지만 진시황릉에 대한 사마천의 사기에는

340만 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기원전 246년에 시작했다고 하죠.

그 사기에 따르면 지상의 황궁을 그대로 옮긴 것과 같은 규모이며 사람이 접근할 수 없도록

수은이 흐르는 강을 5000개나 만들고 수십 개의 망루를 세운 도심 안에는

온갖 보물과 병사들을 배치했다고 합니다.

특히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 진시황릉 공사에 동원되었던 인부들을 모두 죽여버렸다고 합니다.

출토 당시의 모습입니다.

대부분 갱도가 무너지면서 이렇게 파손된 상태로 출토되었다고 하죠.

현재도 그 파손된 유물은 전문가들에 의해서 퍼즐을 맞추듯 맞춰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작업 중인 문화재 발굴 모습입니다.

▲박물관 한쪽에 전시된 실물크기의 병사입니다.

더군다나 병사 한 명, 한 명이 모두 얼굴 모습과 표정이 다른 것을 보면

실제 병사들을 모델로 그대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죠.

▲당시 귀족들이 타고 다녔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차입니다.

진짜 실물 크기였다면 당시의 말은 상대적으로 작았던 듯합니다.

▲최초 발견될 당시 우물 파는 현장 사진입니다.

세기의 현장인 셈이죠.

▲이제 병마용박물관을 나와서 진시황릉으로 갑니다.

사실 병마용갱도 진시황릉의 일부이지만 릉의 외곽에 불과한 것이죠.

인간의 권력욕이란?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결점이 아닐까요?

그것 때문에 희생된 인류가 얼마나 많을까요?

전쟁, 억압, 독재, 부정, 부패....

인류의 가장 크고 무서운 적은 인간이라는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민주주의가 완전히 정착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지만

요즘 동서를 막론하고 세계의 권력 심장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뭐가 비정상이고 뭐가 정상인지 구분을 못할 지경이죠.

▲진시황릉 주변에서 감을 수확하는 농부입니다.

안 지방에는 감나무와 호두나무, 그리고 석류가 많이 난다고 하죠.

그래서 산, 밭 가릴 것 없이 감나무가 노란 감을 주렁주렁 달고 서 있습니다.

감은 메추리알 크기지만 씨가 없고 당도가 높았습니다.

▲진시황의 실제 무덤으로 추정되는 언덕입니다.

이건 무덤이 아니라 하나의 산을 만들어 놓은 셈이죠.

그래서 전동차를 타고 돌아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습니다.

▲역시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연인원 340만 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36년 이상 걸렸다고 합니다.

아직 발굴되지는 않았지만 x레이 등으로 투시해 본 결과

지하 궁전 형태로 이루어진 무덤이 확실하다고 하죠.

그러나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 바닥에 수은을 뿌려놨기 때문에

접근할 수 없어서 발굴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아무튼 권력의 위대함과 권력의 무상함,

그리고 권력의 사악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ㅡ2016.11.11.진시황릉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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