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26. 16:10ㆍ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사찰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 15길 1(금산리 39)
▲산사는 봄 풍경도 아름답지만 산사의 가을은 더욱 특별하지요.
특히 늦가을의 정취는 화려함과 쓸쓸함이 섞여있는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켜 줍니다.
모악산 산행을 마치고 딱 그 느낌 느끼기에 좋은 날 금산사를 찾습니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인 599년에 창건된 절입니다.
그러니까 1,400여년이 지난 말 그대로 천년고찰이지요.
▲백제시대에 창건했지만 금산사가 대 사찰의 면모를 갖춘 건 통일신라시대라고 합니다.
진표율사가 지금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미륵전을 지으면서라고하지요.
▲특히 후백제의 견훤이 아들 신검에게 금산사에 감금되었다가 탈출해서 왕건에게 투항한 일화는 유명하지요.
드라마 '왕건'에서의 그 장면이 지금도 뇌리에 선명합니다.
▲천왕문 오른쪽에는 보물인 당간 지주가 있습니다.
당간은 깃발을 매어 놓은 장대를 말하지요.
그 장대를 지탱해주는 돌기둥이 지주입니다.
이 당간 지주는 금산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재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현존하는 당간 지주 중에서도 가장 완전한 형태의 문화재라고 합니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들어서면 거대한 전각 형태의 문이 나옵니다.
절의 중심 영역으로 들어가는 문들의 마지막 문인 보제루입니다.
보제루는 널리 중생을 극락세계로 이끌어주는 누각이라는 뜻이라지요.
아래층은 문으로 사용하고 위층은 대중집회나 불교용품 저장공간 등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 보제루 옆에는 목련나무 한 그루가 듬성듬성 갈색 단풍잎을 매달고 있습니다.
그 갈색잎를 매달고 있는 잔 가지 끝에는 벌써 내년 봄에 피울 꽃망울이 또렷합니다.
인고의 겨울을 보내고 나면 봄을 알리는 신비로운 새하얀 꽃망울을 터트리겠지요.
▲드디어 보제루를 지나 이제 절마당으로 들어갑니다.
넓은 절마당에 균형 있게 배치된 전각들.
마치 궁궐에라도 들어가는 듯 한 기분입니다.
▲확 트인 절마당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범종각이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듯하게 자리잡고 있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국보인 미륵전이 화려하고 웅장한 자태로 우뚝 서있고
왼쪽에는 대장전이 그 미륵전을 향해 경배하듯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장전 뒤편 기와 담 너머에는 늦은 단풍이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오색 찬란했던 가을을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기에 손색이 없는 풍경입니다.
▲너무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은 전형적인 늦가을 풍경입니다.
어쩌면 산사의 분위기로는 화려함보다는 스산한 이 풍경이 더 어울리는 풍경이 아닐까요?
▲보물인 대장전은 대장경을 보관하려고 만든 전각이라고 합니다.
최초 전각은 정유재란 때 일본 놈들의 방화로 불타 없어지고
현재의 건물은 인조 13년인 1,635년에 다시 지었다고 하지요.
예나 지금이나 나쁜 일본 놈들입니다.
▲대장전 앞에 있는 석등입니다.
역시 보물이지요.
석등은 부처님과 조사 스님께 등불을 공양하기 위해서 금당이나 부도전 앞에 세워집니다.
고려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등은 원래 미륵전 앞에 있었으나
1922년 대장전을 이전할 때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합니다.
▲대장전 옆에 있는 명부전입니다.
명부전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지장보살을 모시는 전각이지요.
▲명부전 앞에 있는 또 하나의 보물입니다.
그런데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뿐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대적광전의 옆모습입니다.
이제 대적광전을 뒤로 돌아 나한전으로 향합니다.
▲돌담과 어우러진 우리 옛날 문들은 투박하면서도 멋스럽습니다.
▲절마당 뒤편에는 조사전과 나한전이 나란히 있고 그 옆으로 삼성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조사전은 고승의 영정을 모신 전각이지요.
그리고 나한전은 불교의 수행자인 '아라한'을 모신 전각입니다.
그래서 나한전에는 16 나한상과 500 나한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금강계단이라고도 하는 방등계단은 대적광전 오른쪽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보물입니다.
통일신라 시대인 762년에 진표율사가 설치하고 고려 때인 혜덕 왕사 소현이 중수한 戒壇(계단)이지요.
▲들어갈 수 없어서 볼 수는 없었지만
중앙에 종 모양의 탑 상부에는 9룡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단의 각 면에는 고려시대의 수려한 기법이 잘 표현된 불상과
무력으로 불법을 지키는 신 인 신장상이 조각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방에는 사천왕 등 호법신장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리탑 형식의 계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를 갖춘 희귀한 문화재라고 합니다.
▲이 방등계단에서는 출가자와 재가자,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할 계율을 받는 '수계'의식이 행해졌으며,
세속인이 지켜야 할 열 가지 계율인 십선계를 주었다고 합니다.
▲보물인 그 방등계단 앞에는 또 다른 보물이 우뚝 서있습니다.
진신사리를 모신 오층 석탑으로 고려 때인 979년에 세웠다는 천년 고탑이지요.
현재는 5층만 남아있지만 원래는 9층 석탑이었다고 하니까 그 위용이 대단했을 듯합니다.
▲원래는 석탑의 윗 기단 사리를 모시는 사리공에 정광여래 사리 2과,
석가여래 진신사리 5과, 그리고 청동 불상 등을 모셨으나
현재는 사리를 제외한 다른 유물들은 금산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다시 방등계단 옆에는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에 직접 예불을 드리는 전각이지요.
그래서 殿(전)이나 閣(각) 보다 높은 宮(궁)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또한 사리는 부처님의 분신과 다름없기 때문에 불상이나 불화가 모셔져 있지 않는 게 특징입니다.
그래서 통상 사리탑이 직접 보이도록 벽이 없지요.
▲방등계단에서 내려다본 금산사의 넓은 절마당입니다.
잡다한 시설물이 없어서 넓지만 고즈넉합니다.
▲드디어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국보 제62호 미륵전을 만납니다.
미륵전은 신라시대 전각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연대나 형태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후 진표율사가 764년부터 연못을 참숯으로 메우고 거대한 철조 미륵불을 조성하여
766년에 미륵전 금당에 봉안하였다지요.
▲그러나 당시의 전각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역시 일본 놈들 소행이지요.
현존하는 미륵전은 1601년부터 1635년 사이에 재건된 뒤 수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 건물이라고 합니다.
3층 중에서 1층은 79평쯤으로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은 약 50 여평으로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은 약 28평쯤으로 미륵전이란 각각 다른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미륵전 1층에 모셔져 있는 석고미륵여래입상입니다.
미륵불은 석가모니께서 열반하신 지 56억 7천만 년 후에 나타나 중생을 구원할 미래의 부처라지요.
56억 7천만 년!
인간의 상상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원래의 미륵불은 1934년 화재로 파손되고 현재의 불상은 1936년 공모에서 당선된
근대 조각가인 김복진 작가가 조성한 불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석고 위에 금박을 입힌 불상이지요.
그래서 국보나 보물이 아니라 그냥 국가 등록문화재입니다.
아무튼 어마어마한 높이의 삼존불 중 가운데 미륵불은 높이가 무려 11.82m나 된다고 합니다.
옥내 입불로는 세계 최대라지요.
▲미륵전은 그 규모가 웅대하고 건축적 완성도가 높아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가치가 있는 건축물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보로 지정되었다지요.
▲이제 미륵전에서 대적광전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대적광전 앞에는 또 두 점의 보물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인 육각 다층 석탑은 마치 장식품처럼 아름다운 탑입니다.
다른 대부분의 화강암 탑과 달리 고려시대 양식의 육각 다층 석탑은
벼루를 만드는 점판암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검은색이지요.
▲석련대는 다층석탑 옆에 있는 또 다른 보물입니다.
통일신라와 고려 초기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련대는
불상을 올려놓는 받침대라고 합니다.
▲대적광전은 금산사 절마당의 한가운데 있는 대표 전각입니다.
비로자나불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전각으로
'화엄경'의 연화장세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대적광전은 그 연화장세계의 다른 말인 대정적(大靜寂)세계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대적광전에는 다른 사찰의 대웅전보다 많은 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원래는 삼신불을 모셨으나 정유재란 때 금산사의 모든 전각이 불탄 후 다시 지은 과정에서
대적광전의 원래 이름인 대웅대광명전과 극락전, 그리고 약사전에 모셨던 불상을
여기에 함께 모셨다지요.
▲그나마 1986년 화재로 전소되어 1990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천년고찰인 금산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여러 일화가 있겠지만
특히 근대의 각민대사에 얽힌 일화가 있습니다.
다음은 호남 불교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고승인 각민대사 이야기입니다.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 모악산은 금이 나오는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급기야 1900년에 절의 남쪽에 대규모 금광이 생깁니다.
그 여파로 절에 심각한 피해가 생겼지요.
이에 각민대사는 절을 수호하기 위해서 관아를 설득해 채광 금지령을 받아 냅니다.
그러나 채광꾼들은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1902년 새해 첫날 다시 금산사를 침법 합니다.
스님은 미륵전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채광꾼들을 막았다지요.
이때 채광꾼들이 던진 돌과 쇠망치에 맞아서 입적하고 맙니다.
금산사의 위대한 순교자가 되신 것이지요.
▲늦가을 정취가 가득한 금산사.
조금 더 일찍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풍경이기도 했지만
이만큼의 늦가을 정취도 보물과 국보급 문화재와 어우러져 충분히 아름다웠지요.
그보다도 고목이 된 벚나무가 즐비한 봄 풍경은 또 얼마나 화사할까? 하는 상상으로
금산사 관람을 마칩니다.
ㅡ2022.11.17.금산사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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