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여행]제16화 바이킹 배 박물관과 빈스트라 풍경

2022. 7. 18. 09:13세상은 넓다/북유럽

《패키지여행의 장점.》

《힘들만하면 차를 타고 이동한다.

 

비겔란 조각공원은 850m의 거리에 조성되었다지요.

진입로까지 더하면 왕복 2km를 넘게 걸어야 하는 거리입니다.

그래서 관람을 마칠 때쯤이면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 지친몸을 이끌고  이제 바이킹 배 박물관으로 이동합니다.

이동 겸 휴식시간인 셈이지요.

 

 

 

바이킹 배 박물관에는 오슬로 피오르드에서 발견된 3척의 바이킹 배를 전시해 놓은 곳입니다.

각각 오세베르그호, 고크스타호, 투네호라는 배입니다.

그중에 오세베르그호는 가장 크고 우아한 배입니다.

35명의 노젓는 사람과 돛을 이용해서 항해를 했다지요.

그런데 배의 크기에 비해서 노 젓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던 듯합니다.

그래서 빠른 침투와 후퇴가 가능했을까요.

이 배는 50년쯤 실제 사용을 한 배라고 합니다.

그 후 여왕의 관으로 사용되었지요.

 

 

 

그러니까 여왕과 함께 바다에 순장한 거지요.

길이가 30m , 폭이 6m인 배 안에는 각종 장식품과 가구류, 부엌용품까지 부장 되었다고 합니다.

 

 

 

바이킹(Vikings)?

우리에게는 해적 느낌이 강한 이름이지요.

사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가 주무대였던 바이킹은 9~11세기에는 유럽 전역을 휩씁니다.

습격하고 약탈하는 방식으로 식민지화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유럽의 역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왕국이었다지요.

그것도 한 때는 막강한 왕국을 형성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약탈을 일삼은 탓에 북유럽 국가들은 한때는 서로 자기네의 조상이 아니라고 했다지요.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다시 서로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내세운다고 합니다.

약탈이 아닌 용맹으로 재해석한 것이지요.

 

 

 

바이킹 박물관 전경입니다.

박물관 앞에는 바이킹 연구에 일생을 바친 고고학자 안네스티네 부부의 흉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동중 촬영

바이킹 배 박물관을 끝으로 오슬로 일정을 마치고 드디어 대자연으로 향합니다.

시내 관광은 역사유적을 관람하는 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유익하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부도 해야 해서 머리를 식히는 여행은 아니지요.

대자연에 몸을 맞기는 것이야말로 머리를 식히는 힐링여행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양한 북유럽의 풍경과 산길을 돌고 돌아 도착한 빈스트라 숙소입니다.

빈스트라는 해발 1000m의 산속 마을입니다.

산정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알프스풍의 마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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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배정받고 간단한 저녁식사까지 마쳤는데도 아직도 해가 떠 있습니다.

역시 백야현상 덕분이지요.

그래서 산속 마을 산책을 나섭니다.

 

 

 

자연 친화적인 지붕이 인상적입니다.

겨울에는 춥지 않고 여름에는 덥지 않을 듯 한 지붕입니다.

 

 

 

마을이라지만 사실은 거의 별장 지대입니다.

띄엄띄엄 들어서 있는 별장들 중에서 한 가족을 만났습니다.

여름 휴양을 왔다고 합니다.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은 산중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보고 서로가 반가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분들을 찍고 저분들은 우리를 찍습니다.

찍고 찍히는 게 이렇게 유쾌할 때도 있습니다.

 

 

 

참 행복해 보이는 일가족입니다.

행복한 나라의 행복한 가족입니다.

이분들은 1년에 한 두 달쯤을 이곳에서 보내고 다시 시내로 내려가서 생활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꿈같은 인생을 사는 것이지요.

 

 

 

일행들과 단체 사진도 하나 남깁니다.

사실 가족사진을 보내드리기 위해서 이메일을 적어왔는데 잘 못 적어오는 바람에 보내드리지 못한 사진입니다.

 

 

 

그분들 별장의 외관입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별장 하나쯤은 소유하고 있다지요.

대부분의  직장들이 휴가도 한 달씩 주기 때문에 가능한 별장 생활이라고 합니다.

왜 살기 좋은 나라,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인지 알 것 같습니다.

 

 

 

저 아래 호수가 내려다 보입니다.

이런 곳에서 한 달 살이를 한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하룻밤을 묵을 호텔

다시 우리가 묵을 호텔을 지나 반대쪽 산책에 나섭니다.

 

 

 

자연 친화적인 호텔 방

오늘 밤을 보낼 호텔 방입니다.

말 그대로 호텔 느낌이 아니라 별장 느낌의 방이지요.

쾌적하고 아름답고 아늑한 최고의 숙소입니다.

 

 

 

이쯤에서 노르웨이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노르웨이」란 '북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라지요.

그래서 이름처럼 스웨덴 위쪽으로 길게 누워있는 형상입니다.

폭은 430km이지만 길이는 무려 1,753km에 이르는 국토를 가지고 있지요.

 

 

 

노르웨이의 국토는 우리나라의 3배가 넘는 면적이지만

인구는 500만 명 초반밖에 되지 않은 쾌적하고 잘 사는 나라입니다.

 

 

 

1800년대 초반까지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가 연합국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덴마크가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넘겨주면서 스웨덴이 주권행사를 하게 되지요.

그러다가 스웨덴이 다시 국토를 노르웨이에 떼어주게 됩니다.

 

 

 

그때 비옥한 남쪽 땅은 스웨덴이 차지하고

산악지대인 북쪽 땅을 떼어줍니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나지요.

쓸모없다고 떼어준 그 북쪽에서 유전이 발견된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저녁노을이 깔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상태로 또 얼마나 더 있을까요.

 

 

 

그래서 어둠을 개의치 않고 주변 산책을 계속합니다.

 

 

 

그림 같은 집이란 이런 집이 아닐까요?

 

 

 

그 옆으로는 황소 한 마리가 느긋하게 풀을 뜯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모습이 신기한지 이 녀석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습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아무튼 영락없는 그런 집입니다.

실제 이곳에도 그런 경쾌한 노래는 아니지만 '솔베이지의 노래'라는

애틋한 사연의 노래가 있다고 합니다.

 

 

제목이야 한두 번 들어보았을 테이지만 내용이나 얽힌 사연은 몰랐던 노래이지요.

다음은 그 노래가 탄생하게 된 설화입니다.

"이곳에 농사짓는 한 청년이 살았지요.

그리고 그 동네에는 솔베이지라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둘은 사랑하게 되고 결혼까지 약속을 합니다.

가난했던 청년은 돈을 벌기 위해서 외국으로 나갑니다.

그 후 갖은 고생 끝에 모은 돈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오지요.

그러나 국경에서 산적을 만나 돈을 빼앗기고 병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연인 솔베이지는 병들고 지친 사랑하는 사람을 반갑게 맞습니다.

몸이 쇠할 대로 쇠한 노인이 된 청년은 솔베이지의 무릎을 베고 영원히 눈을 감습니다.

이때 꿈에도 그리던 연인을 안고 노래를 부르며 그녀도 연인을 따라갑니다.

이때 부른 노래가 바로 솔베이지의 노래입니다"

 

 

 

숙연해지는 솔베이지의 영원한 사랑 이야기와 잘 어울린 풍경입니다.

이제 드디어 해가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이 황혼은 또 얼마나 갈까요.

 

 

 

그래도 산길이라서 서둘러 숙소로 향합니다.

 

 

 

현재의 시간이 밤 10시도 훨씬 지난 시간입니다.

완전히 어두워지려면 아직도 1시간쯤은 더 지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을 위해서는 이쯤에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게 북유럽 생활이라고 하지요.

 

 

ㅡ다음은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편으로 이어집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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