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신나는 놀이 같았던 산행,사량도 지리산

2021. 3. 8. 09:48오르다/100대명산

섬산행의 1번지.

사량도 지리산은 섬산행의 모든 재미를 두루 갖추고 있는 산이다.

맑은 날이면 멀리 지리산이 보인다고 해서 지리망산(知異望山)이라 부르던 이름이 요근래에 그냥 지리산으로 바뀐 사량도 지리산.

섬이지만 워낙 산행인구가 많아서 여러곳에서 배가 뜨기때문에 접근성이 비교적 좋은 곳이다.

그러나 수도권에서는 워낙 거리가 멀어서 1박이나 무박을 해야 한다.

그중에 나는 무박의 긴 여정을 택했다.

ㅡ집에서 전철로 강남고속터미널(1시간) ㅡ통영(심야우등 4시간10분)ㅡ가오치항(택시20분)ㅡ

금평항(40분)ㅡ돈지마을(마을버스20분)ㅡ

 

 

 

강남고속터미널을 출발한 심야 우등고속버스는 새벽 4시 통영에 도착했다.

첫배는 아침 7시.

시간 보낼곳이 마땅치 않아 바로 택시를 타고 가오치항으로 갔다.

항구라서 식당이라도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도착해보니 아무것도 없는 허허바닷가였다.

조그만 식당과 매점이 있었으나 모두 문을 닫았고 여객선 대합실마저 잠겨 있어 난감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어디서 왔는지 산악회 버스 3대에서는 라면을 끓이느라 법석을 떨고 있었다.

첫배 시간까지는 아직도 2시간 넘게 남은 상황.

꼼짝없는 노숙자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다행히 1시간쯤 지났을 무렵 대합실 문도 열리고 식당문도 열었다.

식당이라고 해봐야 메뉴가 굴떡국과 라면,그리고 충무깁밥이 전부다.

굴떡국과 충무김밥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충무김밥은 생각보다 별로였지만 굴떡국은 맛이 일품이었다.

가오치항에서 사량도행 배는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2시간 간격으로 운항한다.

거리 20km, 시간은 40분 걸린다.

 

 

배는 정확히 7시에 뱃고동을 울리며 출발했다.

운무에 휩싸인 항구를 빠져나오자 새벽 바다 풍경이 펼쳐졌다.

해무 속 일출 풍경을 배경 삼아 밤을 새운듯한 고깃배가 갈매기의 호위를 받으며 빠른 속도로 귀항을 하고,한려수도의 잔잔한 바다에 떠있는 올망졸망 작은 섬들이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그 그림같은 풍경 속을 사량호는 거대한 포말을 일이키며 40여분 항해 끝에 금평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과 차량을 토해 놓고 아무일도 없었던듯 유유히 다시 떠나갔다. 

 

 

 

사량도의 사량은 원래 두 섬 사이를 흐르는 해협을 일컬었던 옛 이름명에서 유래하였단다.
그러나 지명 유래설에 의하면 이곳 옥녀봉에 얽힌 비련의 설화에서 연유되어 사랑이 사량으로 변천되었다는 설과 섬에 뱀이 많이 서식했다는 설,그리고 섬의 형상이 뱀처럼 기다랗게 생긴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으며 어사 박문수가 고성 하일면 문수암에서 바라보니 상.하도 두섬이 짝짓기 직전의 뱀처럼 생겼다 해서 사량도라 불리어 졌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그중에 한자 표기가 뱀蛇자와 들보량樑자를 쓰는걸 보면 뱀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라는 설이 더 유력한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금평항에서 섬 마을버스를 타고 산행기점인 돈지마을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원버스를 타본다.

더이상 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등산객을 짐짝처럼 싣고서야 출발한 섬마을 버스는 구불구불 산길을 20여분 달려서 조그만 어촌마을에 섰다.

조용하던 섬마을이 갑자가 어수선 해 진다.

나도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막걸리 한 병을 사서 배낭에 챙겨넣고 산행을 시작 했다.

 

 

 

산행은 돈지분교에서 시작된다.

돈지분교는 1991년 3월 1일 폐교되었다고 한다.

한때는 꼬맹이들의 조잘거리는 소리로 가득했을 운동장이 휑하다.

그래도 어떤 용도로 사용을 하고 있는지 20년이 지났지만 운동장엔 잡초가 없고 건물도 새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어 깨끗했다.

 

 

 

연리목(팽나무)

교정 한켠에는 아주 장대하고 수형이 아름다운 고목나무가 마을을 수호하듯 서 있었다.

세상 없어도 멋있는거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나.

꼬맹이들의 운동장을 거인이 성큼성큼 가로질러가는 상상을 하면서 고목나무 가까이 갔을때 그 나무가 그냥 고목나무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연리목이었던 것이다.

두개의 나무가 어찌 저리 완벽한 한 몸이 되었을까?

서로에 대한 사랑 때문 일까?

배려 때문 일까?

희생 때문 일까?

그것이 무엇 때문이든 둘이 하나가 되는 건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을 만 천하에 알리고 있는듯 했다. 

 

 

 

마을길과 학교길, 그리고 밭둑길을 지나면 본격적인 등산로인 소박한 돌탑으로 조성된 한오백년 길이 시작된다.

시작은 소박한 산행인 셈이다.

 

 

 

그러나 소박하다는 생각은 순간이었다.

불과 10여분만에 거칠은 암벽이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통바위에서 자라는 소나무.

참으로 통큰 녀석이다.

 

 

 

돈지마을 전경.

20분쯤 오르면 나오는 첫 조망점에서 본 돈지항 풍경이다.

저 풍경을 싫증나도록 산행내내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된다.

 

 

 

사량도 지리산의 바위 형태다.

섬 전체의 바위가 이런 모양의 연장선상에 있다.

구들장 같기도 하고 자연이 만든 계단 같기도 하고,시루떡 같기도 하고, 칼날 같기도 하고 ....

세워진 바위들은 화산 용암이 굳는 온도 차이에 따라 돌이 판처럼 쪼개진 수직절리라고 한다.

그리고 옆으로 판자처럼 생긴 바위들은 용암이 시간차를 두고 분출 할때 생기는 판상절리라고 한단다.

사량도의 바위들은 이 두형태의 절리가 혼재해 있단다.

 

 

 

산행시작 30여분만에 능선에 올라섰다.

 

 

 

능선에 올라서면 돈지항과 반대쪽 내지항이 산능선을 사이에 두고 한 눈에 들어온다.

사량도 지리산은 일단 능선에만 올라서면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다.

뾰쪽한 능선길과 우회길 뿐이기 때문이다.

그중에 뾰쪽뾰쪽 날카로운 암벽길로 이루어진 능선길은 내지마을쪽과 돈지마을쪽의 환상적인 한려수도 풍광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천상의 길이다.

 

 

 

가까워진 정상.

사량도 지리산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섬 산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제법 험준한 산세를 자랑한다.

 

 

지리산 정상

1시간30여분만에 정상에 섰다.

높이 398m의 사량도 지리산은 이어서 나오는 볼모산보다 1m 낮지만 사량도의 대표산으로 통한다.

지리산이 보인다고 해서 지리망산이라고 했다는데 오늘은 박무가 심해서 확인 불가다.

더군다나 쾌청한 날씨가 아니라서 지리산은 커녕 한려수도의 풍경도 제한적이었다.  

 

지리산 정상은 오르는동안 계속 보아온 풍경을 보기때문에

사실 정상에서의 감흥은 생각보다는 그리 크지 않았다.

 

 

돈지항과 내지항이다.

역시 섬 바닷가의 조그만 항구들은 평화로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가야할 볼모산과 옥녀봉이 보인다.

사량도 지리산 산행은 종주산행이다.

엄밀히 말하면 지리산,성자암,월암봉,볼모산,가마봉,옥녀봉으로 이어지는

크고작은 여섯개의 봉우리를 넘는 종주를 하는것이다.

 

 

이제 사량도의 최고봉인 볼모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

 

 

 

볼모산(달바위)

멀리서 보면 달덩이 처럼 둥글다 해서 달바위라고 하는 볼모산은 해발 400m로 사량도의 최고봉이다.

주변 조망도 지리산보다 훨씬 뛰어난데도 사량도의 대표이름에서 밀리고 말았다.

지리산이 보인다는 지리망산의 스토리텔링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지리산에서 보이는 지리산이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은 볼모산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슬아슬 칼바위 능선이 계속되고.....

환상적인 조망은 끝이 없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누군가 지나가면서 "와~한국의 나포리다"라며 감탄사를 연발 한다.

나폴리인들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

내려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고,카메라에 담기를 몇번씩 번갈아 되풀이한 후에서야 하산길에 들었다.

조금만 더 청명했더라면 정말 멋있는 장면이 연출되었을 환상적인 풍경을 뒤로 하고 .....

 

 

 

아직도 가야할 길이 난망하다.

300m급의 섬 산이라고해서 흔히들 사량도지리산 산행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크고 작은 여섯개의 봉우리를 넘나들어야 하기때문에 여느산 못지않게 힘들다.

 

 

 

피라미드 같은 신비한 모양의 바위를 넘는다.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일종의 수직절리라고 한다.

 

 

 

맨 오른쪽이 대항해수욕장 전경이다.

사량도 산행은 산이 멋있는지?

바다 풍경이 멋있는지? 

딱히 구분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오른쪽은 걸어온 길,왼쪽은 가야할 길이다.

이제 산행이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들어서고 있는 구간이다.

 

 

 

이제 가마봉 오르는 계단 앞에 섰다.

15년쯤 전에 아들과 함께 왔을때는 없던 계단이다.

계단이 생겨서 안전하게는 오르지만 암벽 오르는 스릴은 없어져서 조금 아쉬움도 남는다.

 

 

 

아름다운 대항해수욕장이 발아래 있다.

 

 

 

높이가 303m인 가마봉도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석을 담으려고 기다리는데 산객들의 계속되는 인증샷때문에 그냥 대충 담아야 했다.

가마봉 정상 한켠에는 낮은 돌탑들이 산재해 있고 옥녀봉이 조망되기 시작했다.

 

 

 

 

멀리 옥녀봉 구름다리가 보이고 옆으로 동강이 보인다.

사실은 바다이지만 워낙 폭이 좁아서 동강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그 동강을 사이에 두고 왼쪽 섬을 사량도 윗섬(상도),오른쪽 섬을 아랫섬(하도)라 한다.

지금 다리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어서 아마도 윗섬 아랫섬의 구분이 무의미 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듯 하다.

 

 

 

가마봉에서 내려가는 계단이 워낙 직각에 가까워서 일부 여성 산행객들이 중간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정체가 극심했다.

그러다보니 여기서도 새치기가 극성이다.

특히 일부 산악회원들 군중심리에 우르르 새치기 하는 몰염치는 도를 넘었다.

정말 기분좋은 산행을 한순간에 짜증스럽게 해버리는 행위다.

나중에 아는 일이었지만 옆으로 조금만 우회하면 안전하고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걸 몰라서 다들 하릴없이 줄을 서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 줄을 섰던 직각 계단.

그 왼쪽으로 우회길이 보인다. 

직각으로 오르는 철난간과 우회하는 두개의 계단이 있는데 사람들은 가파른 계단으로 내려오려고 길게 줄을 서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좁은 상도와 하도 사이의 좁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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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설치된 구름다리.

사량도 지리산은 15년 전쯤에 아들하고 산악회 따라서 왔던곳이다.

그때는 전 구간이 계단없이 로프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지금보다 훨씬 스릴 넘치는 산이었다.

물론 조금 위험하고 힘은 더 들었지만....

그러나 지금은 워낙 등산인구가 많아서 이런 안전시설과 편의시설이 되어있지 않다면 대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덕분에 멋있는 암봉이 구름다리로 연결이 되고 그 구름다리가 또 하나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개인적으로는 구름다리를 옆으로 우회해서 계단으로 설치하고 암봉의 자태는 살렸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구름다리가 놓이기 전 옛날 로프 사다리가 추억용으로 그대로 놓여있다.

중간쯤 내려오면 흔들거려서 후들거렸던 아찔한 기분....

그 짜릿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발아래 대항해수욕장의 아름다운 해변이 그림처럽 펼쳐져 있고

멀리 해상국립공원 한려수도가 아스라하다.

 

 

 

드디어 옥녀봉 정상이다.

그냥 줄서기 싫어서 인증샷을 포기하고 정상석 사진으로 대신 한다.

옥녀봉의 정상은 이름과 달리 참 볼품 없었다.

 

 

 

그러나 옥녀봉에는 애절한 전설이 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ㅡ옛날 옥녀봉 아랫마을에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되어버린 간난아이가 있었다.

그때 이웃에 홀로 살던 홀아버지가 그 아기를 데려다 동냥젖을 얻어 먹이며 키웠다.

이후 옥녀는 그 의붓아버지를 친아버지로 알고 자랐다.

그런데 어여쁜 처자가 된 열여섯살이 될 무렵 의붓아버지는 옥녀를 딸로 보지않고 이상한 행동을 하려들었다.

친아버지로만 알고 있던 옥녀는 그 위기를 모면할 묘책을 마련했다.

그리고는 의붓아버지의 수치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지금부터 제가 하라는대로 하시면 아버지의 요구를 들어드릴께요.

내일 새벽 날이 밝기 전에 상복을 입고 멍석을 뒤집어 쓰고 풀을 뜯는 시늉과 송아지 울음을 하면서 소처럼 기어서 뒷산에 올라오면 저도 소가 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수치심으로 의붓아버지가 마음을 바로 잡으리라 생각했는데 정말 소처럼 기어 올라오는 아버지 모습을 발견하고 옥녀는 바위에서 치마를 뒤집어 쓰고 뛰어내려 자결하고 말았다.ㅡ

그뒤 마을 사람들은 그 바위 봉우리를 옥녀봉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오후 3시

옥녀봉에서 내려서는 것으로 6시간의 재미 있는 산행이 끝났다.

산행이 아니라 마치 한바탕 신나는 놀이가 끝난 기분이다.

어제 밤 10시에 집을 출발해서 아침 8시에 섬에 들어오기까지가 워낙 힘이 들어서 그렇지 일단 산에만 들어서면 전혀 시간 가는줄도, 힘든줄도 모르게 산행이 끝이 났다.

배 타는 재미,암봉 타는 재미,한려수도를 조망하는 재미,아기자기한 능선길 걷는 재미,섬에서 나는 해산물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재미까지....

다섯가지 재미가 있는 사량도 지리산은 진정한 섬 산행의 1번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산행코스:돈지마을 ㅡ지리산 ㅡ볼모산 ㅡ구름다리 ㅡ옥녀봉 ㅡ금평항(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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