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essay 지리산 종주이야기] 제4화. 피아골과 임걸령.

2024. 6. 9. 14:38오르다/100대명산

 

[photo essay 지리산 종주이야기]제3화.꿈길 같은 산길 걸어 돼지령.

[photo essay 지리산 종주이야기]제2화.노고단에서 맞이하는 상쾌한 아침▲드디어 2박 3일 지리산 종주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날이다.사실 종주 계획을 세울 때부터 성공의 갈망과 실패의 두려움.항

gabo.tistory.com

▲(위의 제3화에 이어지는 글)

▲09.04 분.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간다.

돼지령에서 피아골 삼거리까지는 700m.

▲피아골 삼거리에서는 피아골 대피소와 직전마을로 하산할 수도 있다.

'피아골'

사연 많은 피아골은 반공영화로 유명하다.

그래서일까?

왠지 이름에서 섬뜩함을 느낀다.

원래 피아골이란 이름의 유래는

옛날 이곳 연곡사에 수백명의 승려가 머물며 수행하는데

식량이 부족해서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피'라는 식물을 심어 배고픔을 달랬다고 해서

'피밭골'이라 부르던 것이 점차 발음이 변해서 피아골로 불리게 되었단다.

그래서 이곳 마을 이름인 직전마을을 한자로 표기하면

피 직稷 밭 전田 으로 표기한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는

이 계곡에서 죽은 이의 피가 골짜기를 붉게 물들였다고 해서 '피내골'로 불리다가 피아골이 되었다고.

아무튼 이 계곡에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왜군에 맞서 처절하게 싸운 구례의병들의 피와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전라남부 총본부가 있던 곳으로 동족상잔의 피가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단다.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오는 곳.

반응형

▲09시 25분.

피아골 삼거리에서 20분 만에 임걸령에 도착했다.

임걸령은 조망도 즐길 수 있고

약수터가 있어서 목도 축일수 있다.

 

 

▲임걸샘.

임걸령 약수는 등산로에서 몇 미터 내려가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앞서가는 일행들이 임걸령 샘물은 꼭 먹고 가야 한단다.

물맛이 좋기로 유명한 약수라고.

그 말 덕분에 내려갈까? 말까? 망설이던 우리 부부도 결국 내려가서 목을 축였다.

 

 

▲임걸령 쉼터.

1,320m 인 임걸령(林傑嶺)은

조선시대 선조 때의 인물인 의적 임걸년이 활동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는 수백 명의 부하를 데리고 이곳으로 들어와 은거하면서 지리산 일대를 지배했단다.

화개 장터까지 가서 행상들의 물건을 빼앗고 훔치기도 했으며,

지리산 일대의 사찰을 털기도 했지만 그 물건으로 가난한 백성을 도와주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의적으로 불린단다.

그런 연유로 해서 임걸년이라고도 하고 임걸령이라고도 했던 그의 이름을 따서

임걸령이라 부르게 된 고개라고 한다.

5분쯤 휴식 후 출발.

 

ㅡ2024.06.02.임걸령.ㅡ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