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제5화-알함브라궁전의 야경

2022. 3. 3. 09:52세상은 넓다/남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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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궁전의 야경.

저녁 식사를 하고 패키지여행의 옵션으로 그라나다 시내 야경과  알함브라야경 구경에 나섰다.

그런데 알함브라 궁전의 야경을 본다고 해서 궁전으로 들어가는줄 알았는데

궁전이 있는 반대쪽 산 니콜라스 성당 전망대에서 조망을 하는 것이었다.

 

 

해질녘 그라나다 시내 모습.

우리가 니콜라스성당 전망대에 도착했을때

그라나다의 광활하게 펼쳐진 붉은 지붕위로 황금빛 석양이 물들고 있다.

그라나다는 이베리아 반도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 주도이다.

저리 커 보이지만 인구는 24만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모두 1~2층의 저층 주택이기때문에 아파트나 연립 위주의 우리나라 도시 기준하고는 차이가 많은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기준으로 한다면 지방의 작은 소도시쯤이 되는 인구다.

 

 

그라나다는 8세기 초부터 이슬람 왕조가 번성 했으며

1492년 기독교 세력에 의해서 점령되기까지 이슬람교도의 마지막 거점도시였다.

 

 

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의 맞은편 언덕에는 이슬람교도들이 모여 사는 '알바이신'지역이 있다.

그라나다에서 이슬람 왕조가 몰락하자 기독교 정복자들을 피해서 이곳에 모여 살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동굴을 파고 숨어 살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단다.

그러나 지금은 유럽속의 아랍이라고 할 정도로 이슬람문화가 꽃 핀 곳이다.

그래서 현재는 알함브라궁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알바이신 언덕에서는

자신들의 이슬람세력이 건설했던 알함브라궁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해가 지고 서서히 어둠이 내리자 성곽의 불빛이 밝아지고 있다.

 

 

이 장관을 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물밀듯이 전망대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인증샷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이슬람거리.

알함브라궁전의 야경 관람을 마치고 언덕 아래 번화가로 내려왔다.

알바이신 언덕에서 내려오면 좁은 골목을 끼고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선 거리다.

지금은 주로 기념품을 팔고 있지만

원래는 피난처였던 알바이신에 살던 이슬람인들을 위한 이슬람물건을 파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라나다 성당이다.

나름 크고 웅장한 성당이지만 워낙 오래되고 어마어마한 성당들이 많아서

전혀 관심 받지 못한 성당이다.

 

 

콜롬버스가 이사벨 여왕에게 신대륙 발견을 보고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동상이라고 한다.

 

 

알람브라는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이었던 나스리드 왕조(1237~1492)의 궁전이다.

 1492년 두 기독교 군주(카스티야 여왕 이사벨과 아라곤 왕 페르디난드2세)가 그라나다에 입성했을 때,

 나스리드의 마지막 왕 무함마드12세(스페인 사람들은 ‘보압딜’로 부른다)는

이슬람인을 해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저항이 아니라 궁궐 밖으로 나와 ‘복종의 키스’로 이들을 영접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완전하게 지켜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대부분의 이슬람들과 그들이 사용했던 건축물들은 비교적 큰 피해를 입지 않아서

현재에 이르러 서유럽에서는 가장 풍부한 이슬람문화가 이곳 그라나다에 남아있다고 한다.

마지막 왕 보압딜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모로코로 도망가면서 되돌아보았다는 자리는

그라나다 외곽에 ‘무어의 마지막 한숨(El último suspiro del Moro)’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이렇게 복잡 다난한 역사가 숨쉬는 스페인 여행의 핵심인 알함브라 궁전을

채 한나절도 안되는 시간에 둘러보았다.

패키지 여행의 한계였지만 너무 아쉬운 관람이었다는 생각과 그래도 단시간에 이만큼 둘러보았다는 성취감이 교차했다.

아무튼 알함브라 궁전은 건축물도 아름다웠지만

궁궐의 이곳 저곳에 조성된 아름다운 정원이 마음과 눈을 정화시켜 주었다.

 

ㅡ다음은 고르도바의 메스키타 사원편으로 이어집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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