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제8화-세비야 대성당과 히랄다 탑

2022. 3. 10. 09:50세상은 넓다/남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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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휴식 같은 공원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마치고 다시 역사의 현장인 성당 관람을 위해서

세비야 대성당으로 이동한다.

 

 

황금의 탑.

지나는 길에 그냥 쳐다보고 스쳐 지나간 황금의 탑이다.

황금의 탑은

13세기 이슬람 시대에 지은 12각형 형태의 탑으로 강 상류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

원래는 강 맞은편에 똑같이 생긴 은의 탑이 있었지만 지금은 황금의 탑만 남았다.

그래서 두 개의 탑을 쇠사슬로 연결해서 적의 침투를 막았다고 한다.

황금의 탑이라는 이름때문에 실제 황금과 관련이 있으려니 했는데

단지 윗쪽의 벽돌이 황금색이어서 황금의 탑으로 불리게 되었단다.

머릿속에서 갑자기 탑의 중량감이 내려갔다.

 아무튼 탑은 소성당, 화약 저장고, 감옥 등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해양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다양한 역활을 한 일종의 망루였던 것이다.

 

 

마치 중세의 거리를 걷는 기분이다.

골목길은 마차를 끄는 말발꿉 때문에 가운데가 파여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세비야 대성당은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대성당, 영국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감으로는 그렇게 커 보이지는 않았다.

 

 

세비야 대성당이 이렇게 크게 지어진 배경에는 과시욕이 자리잡고 있다.

1200년대 중반, 당시 세비야는 무역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엄청난 부가 축적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부유해지면 과시욕이 발동하기는 마찮가지다.

그래서 당시 지배세력이었던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전 지배세력이었던 이슬람의 모스크가

시내 한 복판에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는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성당 참사회의는  “그 어떤 다른 성당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크게 지어

이 성당이 마무리되면 성당을 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의리의한 성당 내부.

천정의 높이가 장난이 아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무조건 톨레도 대성당보다 크게 지어야 한다며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짓기 시작해서

무려105년의 공사끝에  1506년에 완공되었다.

 

 

그렇게 과시욕으로 건설된 대성당이 지금은 세비야 관광의 핵심이되었다.

 

 

콜럼버스 묘 .

세비야 대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콜럼버스 묘다.

무슨 조각품 같아서 실제냐고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실제 무덤이라고 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원래 이탈리아 인이었다.

콜럼버스는 1484년부터 항해의 후원자를 찾던 중,

포르투갈의 아시아 항로개척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스페인의 이사벨 1세 여왕을 만나게 된다.

결국 이사벨 1세 여왕의 후원으로 1492년에 항해를 시작하고 그해 10월 12일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콜럼버스는 4회에 걸친 대항해를 한다.

그러나 일확천금의 꿈이 깨지면서 왕실로부터 멸시와 냉대를 받게 된다.

그러던차에 설상가상 강력한 후원자였던 이사벨 여왕마저 세상을 떠난다.

그러자 세기의 대발견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콜럼버스는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후 그의 유해는 여러차례 이장되다가 이곳 세비야로 돌아와 세비야 대성당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타국을 떠돌던 콜럼버스 묘는 원래 쿠바에 있었다.

배신감때문에 '죽어서도 절대 스페인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때문이다.

그러나 콜럼버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스페인 정부는  유해를 스페인으로 가져 온다.

그때 '자신의 유해를 절대로 스페인땅에 묻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서

그 유언을 지켜주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공중에 떠 있는 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도 스페인을 세웠던 4개의 국가 왕들인 카스티야,레온,아라곤,나바라의 왕들이

들고 있는 공중 묘인것이다.

이때 콜럼버스의 대항해를 지원했던 두 국왕은 앞쪽에서 얼굴을 들고 있고,

반대했던 두 국왕은 뒷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겸비한 천정의 채광창이다.

지금처럼 조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  성당 같은 큰 규모의 건물 내부는 채광창을 통해서 어둠을 해결했다.

이때 발달한것이 아름다운 스태인드글라스다.

 

 

성당내에 보관된 고문서.

 

 

주제단(황금제단).

1480년부터 1560년까지 무려 80년 동안 제작된 높이 27m, 폭 18m 크기의 화려한 중앙 제단이다.

예수님의 생애 44장면을 나무로 조각한 후 금을 입혔다고 한다.

이때 사용한 금은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이며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아무튼 그 섬세함이 80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제작했을법 했다.

 

 

은의 제단.

은으로 만든 은의 제단 위로는 성모 승천화가 있다.

그리고 원래는 은의 제단은 양 옆으로 단이 더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스페인을 침략한 나폴레옹이 그 은을 뜯어서 전쟁자금으로 사용했단다.

 

 

성당 내부를 다 둘러보고 설명을 들으려면 끝도 없을것 같다.

뭐 천주교 신자나 역사 학자쯤 된다면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냥 적당히 둘러보고 히랄다탑으로 향한다.

 

 

히랄다탑은

이슬람에 의해서 12세기 말에 세워졌다.

세비야 시내 어디에서나 보고 기도 할 수 있도록 97m의 높이로 세웠으나

이후 카톨릭 성당으로 개조 되면서 28개의 종을 단 종탑이 되었다.

종탑 위에는 무려 1,288kg의 청동 여신상이 있다.

여신상이 바람의 방향에 따라 돈다고 해서 아랍어의 바람개비란 뜻의

히랄다 탑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히랄다탑 내부 종.

히랄다 탑은 무려 높이가 100여m에 가깝다.

그러나 그 높이를 계단이 없이 경사도로 올라 갈 수 있도록 했다.

인간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편안한 각도로 설계 되었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당나귀를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라고도 한다.

 

 

실제로 계단없는 탑을 등산하듯 오른다.

설계 각도때문인지 하여튼 가볍게 오를 수 있었다.

 

 

오르면서 내려다 본 세비야 시내 전경이다.

마치 중세시대로 시간 여행이라도 온 듯한 착각에 빠질만큼 잘 보존된 아름다운 전경이다.

이런 전경을 보면서 드는 생각.

우리나라였으면 가능할까?

하긴 유럽은 대리석 건물들이라서 가능했으리라.

 

 

 

바로 아래 성당내 오랜지 정원이 보인다.

 

 

히랄다 탑에 올라서서야 왜 세비야 대성당이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성당인지 알 수 있다.

건물의 지붕이 한쪽 방향에서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대성당 앞 광장.

히랄다 탑에서 내려와 광장으로 나왔다.

대성당 맞은편에는 수도원장의 거처였던 대주교궁이 있고

그 옆으로는 알카사르 성벽으로 이어져 있다.

현대식 복장의 관람객들이 아니라면 사방 어느쪽을 둘러봐도 현대적인 느낌이 없다.

말 그대로 중세쯤의 거리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많아서 그 중세 느낌은 아니지만 기념촬영를 끝으로 대성당 관람을 마쳤다.

 

 

ㅡ다음은 플라맹고편으로 이어집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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